열린마당

[구자명의 마음소풍] 그 어머니의 담대한 사랑

입력일 2010-04-28 수정일 2010-04-28 발행일 2010-05-02 제 2695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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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 모두가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바라며”
‘이날 안의 복장은 어젯밤 고향에서 도착한 한복을 입히고 품속에 성화를 넣었다. 그 태도는 매우 침착하여 안색과 말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일상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고 종용자약하게 깨끗이 그 죽음으로 나아갔다.’

이것은 1910년 안중근의 최후를 지켜본 일본인 통역관 소노키의 기록이다. 도마 안중근이 죽기를 원한 예수 승천일에서 하루 늦은 3월 26일 오전 10시경의 일이다. 3월 25일이 고종 탄생일이어서 하루 늦춰진 죽음이었는데, 고종 자신 아니 어느 군왕인들 이토록 위엄 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으랴. 안중근은 당시 교회에서 ‘살인 행위’로 단죄했던 자신의 의거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 한 점 후회 없는 떳떳함을 지니고 천국행으로의 흔들림 없는 신념 속에 떠났다. 그가 이러한 결연함을 초지일관 지킬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의 영향이 컸다고 안중근 연구자들은 말한다. 그가 일찌감치 항소를 포기하고 죽음을 택하게 된 데는 그 앞서 두 동생을 통해 전해 받은 어머니의 말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며, 이들 모자의 천주교 신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라는 게 그들의 판단이다. 이미 많이 알려진 얘기지만 그 감동을 새삼 느껴보기 위해 조 마리아 여사의 전언을 다시 한 번 들어보자.

‘네가 큰일을 했다. 만인을 죽인 원수를 갚고 의를 세웠으니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인가. 비겁하게 항소 같은 것을 하지 말고 깨끗이 죽음을 택하는 것이 이 어미의 희망이다. 옳은 일을 한 사람이 그른 사람들에게 재판을 다시 해 달라고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혹시 자식으로서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평화로운 천당에서 만나자.’

자식 가진 여성 치고 이런 마음을 내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모를 사람이 있을까? 설사 자식이 세상에 다시없을 의거를 도모해 죽음에 처하게 되었다 해도, 어떻게든 사지에서 빠져나올 방법이나 최소한 목숨을 연장할 방법을 찾는 게 당연한 모정이고 인지상정 아닌가. 손발이 닳도록 하늘에 빌고, 백방으로 구명운동을 하고, 자식이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끔 정신무장을 시키는 게, 어미라면 누구나 밟게 될 수순이 아닌가. 그런데 이 어머니, 조마리아를 보라.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어미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의(義)를 위해 한 행위가 죽음을 불렀다면 깨끗이 죽는 것이 효(孝)고, 충(忠)이라는 얘기다. 어디서 이렇게 불가사의하게 담대한 모성이 나오는 것일까? 이는 내게 무엇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받쳐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종의 기현상(?)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조 마리아 여사에게 있어 천국 신앙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그녀는 살면서 어느 순간 하느님 나라의 진경(眞景)을 엿본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들을 ‘영원히 살리기 위해’ 죽게 하는 참담한 사랑을 흔연히 택했으리라.

안중근은 이러한 어머니의 담대한 사랑에 힘입어 사형선고를 받은 이후 실제로 몸무게가 2kg이나 증가하는 이상 현상을 보일 정도로 안정된 심리상태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천명(天命)을 수행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로 「동양평화론」을 완성하기 위해 시간이 좀 더 필요했지만, 그마저 미련 없이 접고 한국천주교의 발전을 위한 당부가 포함된 유서를 작성했다.

동시대 중국의 문호 루쉰이 하얼빈 의거 소식을 들었을 때 “중국 4억 인은 부끄럽게 여기고 죽어야 한다”고 한탄했다 한다. 오늘날 우리 혼탁한 세상의 나약한 모성들도 한번쯤 자신의 자식 사랑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모든 어머니가 영웅의 어머니일 순 없지만, 우리 평범한 어머니들도 좀 더 꿋꿋하고 열린 사랑을 통해 자식을 독려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 자녀들이 안중근 의사가 목숨 바쳐 주창했던 「동양평화론」을 넘어 세계인 모두가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열어 나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