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대희년을 배웁시다 (36) 단식과 희사로 맞이하는 대희년

박영식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입력일 1999-12-12 수정일 1999-12-12 발행일 1999-12-12 제 2180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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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은 물질·쾌락과의 단절 의미
기도·뉘우침·사랑 동반돼야
자선은 ‘사랑의 사도직 수행’
단식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참회 행위로 여겨진다.

단식 그 자체는 음식을 섭취하지 않음을 뜻하지만, 단식이 가리키는 더욱 중요한 개념은 무엇보다 먼저 물질적인 세상과 물질 만능주의 그리고 쾌락주의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음식의 섭취 여부에 따라 올바른 사람이 되느냐 않느냐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단식이 갖는 참된 가치는 열정의 노예가 되지 않는 데 있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굶주리며 고통받는 자들과의 연대성을 드러낼 때에 비로소 단식은 회개의 표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단식한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절제하거나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특히 「혀를 조심하고」, 「분노하지 않으며」, 「거짓과 기만과 헛맹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참된 의미의 단식에는 기도와 뉘우침, 그리고 사랑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랑은 희사로 드러날 수 있다. 성서는 희사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다. 잠언에서는 『남을 보살펴 주는 사람, 곧 가난한 사람에게 제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잠언 22, 9)라고 말함으로써 희사가 갖는 가치를 강조한다. 그리고 신명기에서는 『삼 년째 되는 해 곧 십일조를 바치는 해가 되면, 네 모든 소출에서 열의 하나를 떼내어 레위인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에게 나누어주고 그것을 너희 성 안에서 실컷 먹게 하여라』(신명 26, 12)라고 말한다. 희사한다는 것은 주님의 축복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자선을 베풀 때는 위선자들이 칭찬 받으려고 회당과 골목에서 행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시오. 진실히 말하거니와, 그들은 보상을 다 받았습니다. 자선을 베풀 때는 오른손이 무엇을 하는 지 왼손이 모르게 하여 자선을 숨겨 두시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마태 6, 1∼4).

사실 자선을 행함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며, 그분을 만났다는 외적 표현인 동시에 그분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다. 교회는 성찬의 전례가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항상 강조해 왔다. 그리스도인이 빵과 포도주를 봉헌한다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봉사하는 데 바친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당신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시고 당신 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닮은 행위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자선은 사랑의 사도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신앙인은 가난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셨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착한 일을 해야한다.

『여러분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어, 그들이 여러분의 좋은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시오』(마태 5, 16).

박영식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