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년수상] 72년을 마음을 말끔히 씻는 해로/김동렬

김동렬·시인
입력일 2020-07-15 14:55:54 수정일 2020-07-15 14:55:54 발행일 1972-01-16 제 799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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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이유도 없이 연말과 연초가 되면 바쁘고 초조해지는 심정은 웬일일까? 하긴 친근히 사귀어 오는 이웃 할머니 한 분이 언젠가 몇 사람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사람은 나이 들수록 마음이 몹시 바빠지는 법인데 그 이유는 생의 종착역이 가까워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육신생활에만 치중해서 좌왕우왕 할 것이 아니라 항상 정신적으로 보다 진실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한 번 받은 귀중한 생명을 낭비하는 결과만 가져 온다는 내용의 말씀이었다. 극히 상식적인 얘기고 보니 누구나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말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몹시 들먹였던 가슴이 가라앉질 않아 오늘도 대연각 호텔의 참사를 잊을 수가 없다. 추측컨대 가슴 아픈 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뜻밖에 유명을 달리한 이들도 많고 이런 이 저런 이 정중히 가려내고 나머지 사람들 중엔 필경 수고하지 않고 얻은 돈을 의롭지 못하게 육욕 충족을 위해 하루를 즐기려던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들 주변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굶주린 많은 형제들을 우리는 매일 보고 만나고 있건만 이들 안중엔 그들이 보일리도 없었던 고급호텔. 참으로 묘한 섭리다. 살기 위해 피할 길이 없었던 그 고급호텔? 구유와 비교하면 참으로 대조적이다. 부자가 천국가기 어렵다는 성경 말씀이 시시각각 낱낱이 입증되는 현실을 우리는크리스찬적인 안목이 아니더라도 모든 일을 바로 관찰하고 처신해야 할 시점에 와 있음을 자각해야겠다. 낭비 사치일소 신풍운동 등 각계각층의 높은 양반들이 지상과 TV 갖가지 매스콤을 통해 좋은 말씀 많이들 하시는데 알뜰히 말만 앞서고 실천은 잠재우고 있는 실정이다. 어떤 모임의 간부 한 사람이 연말에 남편이 사 주었다는 밍크 목도리를 두르고 앉아 묻지도 않는 그 목도리의 가격을 발표하는데 시가 35만 원짜리 라고 하면서 자못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용히 머리를 식혀가며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우리 겨레들은 아마 일제 탄압 치하에서 지위 명예 물질 등에 기했던 허기증이 아직까지도 치료가 안 되어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떤 표면적인 데만 치중되는 것 같다.

8ㆍ15를 시점으로 하더라도 많은 시간이 흘러가지 않았는가! 들뜬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좀 다른 각도에서 보다 내적으로 충실한 것이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신식 말로 새로운 가치관 수립이라고 할까? 신년 설계 혹은 보다 새롭고 이상적인 여성상 이런 내용의 글을 쓰라는 청탁을 받았는데 이렇게 저렇게 흐트러진 심적 상황이라 대답으로 간추리는 요령도 없는 말만의 나열 같은 느낌이 든다. 며칠 전에 B 신부님의 수상집에서 시간 도둑이란 제목의 글을 읽었다. 시간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잠시 빌린 것이니 절대로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성직자다운 교훈이었다. 남의 험담이나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악습을 지닌 사람은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길만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셨다.

자신 혼자 정상에 있으니 더 이상 향상할 길이 없다는 결론이 된다. 따끔한 일침은 어쩔 수 없이 내게도 지적되는 말씀이었기에 잠시나마 묵상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금년은 참으로 마음을 거울 앞에 내놓고 말끔히 씻고 닦는 작업을 게을리해선 안 되겠고 읽다가 덮어둔 책을 끝까지 정독하고 틈틈이 펜과 친숙해져 슬하의 두 남매를 위해서 미숙한 대로 얄팍한 시집이나마 한 권 꾸며 봤으면 한다.

김동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