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는『여러분은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시오』 (마태오 5ㆍ37, 야고보 5ㆍ12) 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환경 우리네 분위기에서는 이렇게 하기엔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곧바로 말하기도 듣기도 자유롭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수수방관만 해야 할 것인가 그럴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三不」추방운동을 하자고 외친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얼마만큼의 성과가 있었는지 미지수다. 알 수 없다. 그러기에 당시의 조선일보 만평자는 불발될까 두려웠던지 三不十不發=四不이라 익살(?)을 부렸는가 보다. 부정부패가 도에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너무 잦다. 국가와 국민 사이의 불신도 좁여진 것 같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불안이 가신 것도 아니다. 이런 사회 풍토일수록 우리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부조리를 먼저 말끔히 씻어 버려야 하겠다. 그러면서 이 사회의 불의, 부조리를 없애자고 소리 높여 외쳐야 하리라.
부정이, 부패가, 부조리가 많은 사회, 불신풍조가 만연된 이런 사회일수록 정의의 관념이 투철한 의리의 사나이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을 요구하고 찾고 있다.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신의를 저버려 뒷꽁무니를 뺀다거나 책임을 저야 할 때 다른 이에게 전가시키려는 비겁한 자가 되어서야 안 되겠다. 그래서는 안 된다.
희랍의 디오게네스가 하루는 대낮에 등불을 밝혀 들고 무엇을 열심히 찾는 양 두리번거리면서 복잡한「아테네」시장을 돌아다녔다. 그의 괴상한 행동에 모여든 군중이『당신은 이런 대낮에 등불을 켜 들고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소?』하고 물으니『사람을 찾소』하더란다. 그렇다. 사람을 찾되 사람다운 사람을 찾는다는 말임에 틀림없다. 오늘의 현실엔 더욱이나 잘 맞는 말이리라.
지난 8월 19일 브라질 주교단이 발표한 사목교서「교회와 정치」에서는 인간의 기본권 수호는 교회의 의무임을 명백히 선언하고 있다. 필리핀의 자이메ㆍLㆍ신「마닐라」대주교도 필리핀 계엄 정부하에서 진실과 정의와 사랑이 묵살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정의를 위한 항의가 가톨릭의 의무임을 또한 밝히고 있음을 본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지만 우리는 이미 지난 7월 5일 한국 주교단 명의로「1975년 성년 반포에 즈음하여」라는 사목교서를 접했다.『사회 정의를 가르치고 사회문제 각성에 대한 필요성을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며 모든 인간의 기본권을 거듭 강조함은 교회의 의무와 책임이요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인 주교들과 성직자들의 책무입니다.
더욱이 교회 안에서부터 이 같은 사회 의식과 인간의 기본권을 가르치고 실천에 옮겨야 함은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만 번 지당한 주장이요 선언이다.
지난 8월 6일 한국 주교단 상임위원회는 지 주교님에 대한 신자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고자「지 주교 사건 경위서」를 발표했다. 거기에서『일률적인 신문 보도를 그대로 인정할 수 없는 점이 허다하다』고 지적 해명하고 지 주교님의 평소의 성실성과 애국님과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한 물심양면의 노력에 대하여 깊이 존경하는 바라고 말하고『사회 정의를 갈파하고 인권을 수호하는 노력은 사목자의 당연한 의무』임을 재천명하는 한편 신문 보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깨우쳐 주면서『우리들 주변에서부터 참된 정의와 사랑의 실천을 계속할 것』을 호소했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지나친 물질주의의 범람으로 사회 정의와 윤리 질서가 땅에 떨어져 온갖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여 불의한 행위에도 못 본 채 또는 체념하는 커다란 걸림돌에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 옛날의 순교 정신이 진리를 위한 생명의 바침이었다면 오늘날의 순교 정신은 정의를 증거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차제에 우리는 동료의 입장에서, 같은 성직자의 입장에서 우리의 장상이요, 신비체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관심 밖의 일로 생각했던 일은 없었던가.
수수방관의 태도는 아니었던가.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태도는 아니었던가를 양심의 거울에 비추어 보고 대오각성하여 우리의 자세를 명백히 정하고 일치 단결하여 전진할 때는 바로 지금임을 명심하자. 부패가 있는 곳에 짠 소금의 진짜 맛을 보여주고 부정이 있는 곳에 정의의 참빛을 비추어 주며 현사회를 발효시킬 수 있는 참된 누룩의 구실을 다하기로 굳게 다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