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에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수많은 성직자들이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시작했을뿐 아니라 여러가지 행동으로 비판적인 견해를 표시했다. 이러한 발언이나 행동 때문에 상당수의 성직자들이 구타당하고 체포됐으며 심지어 투옥되기까지 했다.
위정자와 종교인들 사이에 벌어진 이러한 대대적이고 장기적인 갈등은 우리 사회안에서 정치와 종교,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토론과 논쟁을 이야기했다.
최근 한국에서 대통령 직선제 헌법이 채택되고 대통령 후보들이 등장하면서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성직자들이 나타남에 따라 그러한 행동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도 일어나고 있다.
사실 정치와 종교의 관게 관한 논쟁은 우리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1980년대 접어들어 전세계적으로 열띤 논쟁의 대상으로 부상하여 최근에 이에 대한 저서와 논문들이 현저하게 증가했다. 하나의 사회안에 존재하는 정치와 종교는 다같이 국민을 상대하기 때문에 서로 어떤 형태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정치와 종교는 다양한 형태로 관계를 맺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주로, 무엇이 정치와 종교의 바람직한 관계냐 하는 데로 쏠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역사안에서 발견된는 정치와 종교의 다양한 관계를 분석하고 서술하는 것보다는 무엇이 그 양자간의 바람직한 관계인지를 규정하고 그것에 대한 하나의 견해를 정리하는 것이 목적이다.
정치와 종교간의 관계를 논의하는 접근방식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한사람이 가지고 있는 종교가 그의 정치행동에 실제로 영향을 주는지 혹은 그 종교가 그의 정치행위에 영향을 미쳐야하는지에 관해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국가와 교회, 더욱 구체적으로는 정치인과 종교인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있으며 또한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하는 관점에서 그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여기서는 국가와 교회,정치인과 종교인이 동일한 실체가 아니라 실제로 분리된 별개의 실체임을 전제한다.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일어난 정치와 종교의 논의는 두번째 접근법과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고등 종교들과 국가들이 사회안에 출현하면서 정치와 종교간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관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제정일치 또는 정교일치라고도 불리우던 것으로서, 국가와 하나의 종교가 밀착해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와 종교가 이러한 관계에 돌입하게 되면 국가는 그 특정종교를 특별히 우대하며 재정적으로 지원할뿐만 아니라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해 보호하게 된다. 다른 한편, 국가와 밀착관계에 들어간 그 종교는 특권적인 대우를 받는 대가로 국가를 종교적으로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 종교는 국가의 정치체제 뿐만아니라 다른 사회제도를 타당한 것으로 옹호하면서 국가에 봉사하는 입장을 취하며 정통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정교관계는 서구 그리스도교 사회에서만 아니라 동야의 불교 유교 및 이슬람교 사회에서도 널리 발견됐던 것으로서 정교일치는 근래 대부분의 사회에서 사라져버렸다고 말할수 있으나 아직도 일부 사회에서는 계속되고 있다.
사회안에 여러가지 종교가 등장해 종교의 다원화 현상이 근대에 뚜렷해지면서 정교일치가 제도화돼 있는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정교일치제도는 국가가 특정종교를 지원하고 보호하지만 다른 종교들을 탄압하고 억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정교일치는 필연적으로 신앙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을뿐 아니라 종교에 근거한 인간의 차별대우를 초래했기 때문이였다.
정교일치는 필연적으로 신앙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을뿐 아니라 종교에 근거한 인간의 차별대우를 초래했기 때문이였다. 정교일치는 국가가 보호하지 않는 종교를 신봉하려는 국미의 인권을 침해하며 비참과 고통을 가져다주는 제도가 됐다.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종교탄압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정교일치제도는 사회불안의 씨앗이 되고 있었다. 비교국에 대한 종교탄압은 수많은 이들의 반항과 소요행위를 촉발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종교의 다원화 현상의 팽배와 아울러 종교자유에 대한 신념의 전파는 역사안에서 수천년간 존재돼왔던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변화를 몰고 오게 됐다. 정치일교는 정교분리로 점차로 대치돼 갔다. 역사상 정교분리제도는 미국에서 제일 먼저 도입되었고 현대에는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정치와 종교간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로 인정되어 채택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정교분리제도는 신앙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함으러써 사회안정을 촉진하기 위해 고안된 정교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정교분리의 진정한 목적은 종교자유의 보장과 아울러 사회안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종교의 다원화가 이루어진 사회에서 종교자유의 보장을 위한 수단으로 채택된 정교분리의 내용은 국교를 폐지하여 국가와 어느 특정 종교와의 미착관계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가 종교 문제에 있어서 편을 드는것이 아니라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모든 종교들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교분리는 우선 국가가 어느 종교를 진교로 판정하여 모든 국민에거 그것을 강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종교를 사교 또는 사이비 종교로 판정하여 탄압하고 억제하지 않는것도 의미한다는 것이다. 정교분리제도는 일차적으로 종교문제에 있어서 국가의 편파적인 행동과 조치를 없애주고 막아주는 것이다.
정교분리는 신앙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위해 차안된 것이며 종교에 대한 국가의 편파적이고 페단적인 행위를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므로, 이 제도는 국가의 행동을 억제하고 제한하는 것을 그 첫째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이 제도의 발전역사에서 뿐아니라 그 제도의 창안자들의 의도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다. 정교분리의 일차적 목표는 교회나 종교인의 어떤 행위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정교분리가 정치와 종교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로 인정되고 있으며, 그 것은 새 헌법 20조에 명기돼있다. 그 조항은『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이정되지 아니하며, 정치와 종교는 분리된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에서 최근 정치와 종교의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하였을때에 정부와 일부 언론매체들은 이 헌법조항이 성직자의 정부비판을 금지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주장했다.
사실 이런 주자은 정부가 무슷을 하든지 상관없이 종교인은 모른채하고 침묵을 지키든지 혹은 덮어놓고 지지하는 것이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되고, 법률적 근거도 갖이 않았으며, 종교의 본질에 대한 착오에 근거할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해서도 해로운 주장이다.
첫째로, 그 주창자들은 성직자의 정부비판이 정치 행위이기 때문에, 정부를 비판하는 성직자는 정치와 종교를 일치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직자의 정부지지 발언에 대하여는 같은 논리를 적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직자를 끌어들여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게 만드는 정부의 행위에 대하여는 같은 논리를 적용하지 않는다.
성직자의 정부비판이 정치이기 떄문에 헌법에 어긋난다면, 성직자의 정부지지 발언도 헌법을 위해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비판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직자의 지지발언을 유도하는 정부는 성직자가 헌법을 어기도록 이끌어가는 것이므로 더욱 위헌적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둘쨰로, 성직자의 정부비판은 정치참여의 한가지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의 인권조항들은 정치참여의 권리를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인정하는 것이지 유독 정직자의 참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정교분리 조항이 성직자의 정부비판을 금비한다고 해석하면 헌법의 참정권 조항이 인정하는 성직자의 참정권의 일부를, 특히 비판적 참정권만을 종교조항이 슬그머니 뺴앗는 것이 된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헌법은 상호모순적 조항들을 포함하는 것이며, 성직자는 완전한 참정권을 갖지 못하는 이등시민이 되는것이다.
셋째로,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종교의 자유은 선교의 자유를 포함한다. 그리고 성직자의 정부비판은 정의와 인권신장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정치행위가 아니라 선교행위라고 보아야한다. 종교가 철저하게 타락하지 않은 이상, 그리고 인간의 현실에 대하여 무관심하는 비현세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은 이상, 종교인은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 천주교회
는 정의실현과 인권신장을 자신의 사명의 일부로, 나아가서 선교행위와 복음화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파악한다. 성직자의 정의와 인권을 위한 정부비판은 종교조항의 보호를 받는다고 보인다.
넷째로, 정부를 무조건 지지하는 종교나 정치현실에 전연 무관심하는 종교보다는 종종 비판하는 종교가 국가와 사회발전에 더욱 기여하는 것이다. 정치인이 정치 현실을 냉철하게 보고 반성하며 추구할 목표를 선명하게 보아야 국가와 사회는 발전할 것이다. 그런데 전국민의 행복과 민족의 영광스러운 장래의 관점에서 볼 때 비판적인 종교가 정치인의 냉철한 반성과 선명한 목표수립을 위하여 도움이 되는 것이지, 해악이 되는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정치인과 상대할 때에 종교인들은 자신과 교회에 닥칠 수 있고 눈앞에 보이는 이득이나 손해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 그는 교회의 울타리 밖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삶과 민족전체의 장래를 진정으로 염려하는 마음을 항상 유지하야 한다. 헌법이 성직자의 정치참여를 보장하고 정부비판을 금지하지 않는다해서 성직자는 어떤 식으로 점치에 참여하고 개입하든 모두 정당하고 무방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종교인은 정치에 참여하고 개입할 경우에 자제하고 종교인다움을 상실하지 않아야 한다. 종교인은 특정의 정당과 정치후보자들에 대하여 편파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취하면서 권력투쟁에 깊이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성직자는 어느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자신과 교회를 예속시키지 말아야 한다. 성직자는 어느 정당이나 정치인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그가 권력을 잡도록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천주교회법은 성직자의 정부비판을 금지하는 반면에, 정부의 고위직이나 정당의 지도자직의 참여를 성직자에게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다. 또한 평신도가 교회조직의 지도직과 어느 정당의 지도직을 겸임하는 것도 금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