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살아 계실 때도 왜이리 세상이 험악하냐고 하셨다. 그러나 지금처럼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세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매일 첫 주, 우리 구역의 반장들이 미사 안내를 맡는 날이라 교중 미사때 성당에 나갔다.
우리 성당에는 새로운 미사 전례를 시범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얼마 안되는 미사 경문책으로 미사때마다 한 권씩 갖고 미사 참례를 한다.
미사 시작 전, 경문책과 주보를 교우들에게 나누어 주다 얼마 되지 않는 경문책이 곧 동이나 버렸다.
『책이 떨어졌습니다』 『없습니다』는 내 말에 들은 척도 않고 책이 들어있던 빈 바구니를 힐끗 쳐다보며 알맹이 없는 빈 껍데기를 기어코 확인해 뒤에 성당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안내」띠를 두르고 안내를 맡고 있는 반장들의 말을 불신하고 자기 자신이 확인해야 한다는 표정들이 너무한심스러웠다.
너무도 사람 말을 불신하는 이 세상을 한탄하며 씁쓸한 기분만 들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아침. 딸 아이가 빨랫대의 자기 스타킹을 걷어다 달라고한다. 전날 저녁 빨래하며 구멍난 스타킹을 모두 버렸기에 스타킹이 없었다.
서랍 속의 다른 스타킹을 꺼내 신으라니까 빨랫대에 틀림없이 지기 스타킹이 있을 꺼니까 갖다 달라고 한다. 딸애가 빨아 놓은 것이 또 있나하고 빨랫대에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없다고 대답하니 딸애가 하는 말이 『엄마 비켜봐, 내가 가서 확인해 보게…』하는거다.
너무 어이가 없어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지만 아침이라 꾹 참고 비켜 줬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들어온다.
바로 전날 성당에서 미사후 같이 안내하던 반장들과 이렇게 불신하며 어떻게 살 수 있냐며 실컷 얘기하고 집에 왔는데 딸 애가 엄마의 말을 믿지 못하는 거다. 남을 탓할 필요가 없다. 내집안에서부터 못 믿는 사람이있으니.
무엇이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세상을 만들었나?
내 딸애 뿐 아니라 나부터 남을 불신한 적이 없나? 생각해 봤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남을 너무 믿어서 탈이지 못 믿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온 딸 애를 앉혀놓고 아무리 남의 말을 못 믿겠어도 적어도 엄마가 하는 이야기는 팥으로 메주를 순다고해도 믿도록 하라고 타이르면서도 왜 이렇게 불신하는 세상이 돼 버렸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