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데는 베들레헴의 두살짜리 아이들을 모두 죽였다 (마태오2,16~18). 죄없는 아이들이 죽어간 것이다. 그들은 한마디로 쓸모없는 존재들이였다. 한 권력자의 칼 아래 힘없이 쓰러졌다. 그들은 아무한테도 하소연하지 못했고 그저 죽어야했다. 구세주 예수께서 제물이 되기위해 이 세상에 오신 그때 그 아이들이 이렇게 먼저 희생 제물이 된 것이다.
사람은 사랑없이는 살수 가 없는 법이다. 세상의 주인이요 생명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모든 아이들을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새로 태어나는 어린이를 사랑할 의무가 있는것이다. 한 어머니가 그녀의 아기를 가슴에 안고 사랑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한 아버지가 모든이의 아버지요, 모든 생명의 원천인 하느님을 거스려 아기를 버릴 수 있겠는가? 누구든지 인간의 생명에 사랑을 거부하면 이는 하느님을 거스리는 것이고 또 죄를 범하는 것이며 스스로 사람의 품위를 포기하는 것이다.
오늘날 생명과, 인구건과 인간의 존엄성을 거스리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자행되고 있다. 얼마전 MBC 텔레비전이 방영한「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은 하나의 슬픈 이야기 같았다. 한 젊은 과부가 생활고를 이겨내지 못해 딸자식을 스웨덴에 양녀로 보냈다. 20여년이 지난후 그 딸은 수잔 브링크란 이름으로 다시 고국의 어머니를 찾아오는 눈물겨운 인간시대의 한편이었다.
해마다 기아가 늘어가고 거기에 해외입양조차 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우리는 이것이 하나의 죄악이요 비극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지난 80년에서 88년까지 우리나라에서 버려진 아이가 10만 5천명이나 된다한다.
이는 매년 1만영이 넘는 어린이가 버려지고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낙태수술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태아의 수는 더욱 엄청날 것이다. 기아와 낙태는 인간의 품위와 생존권에 대한 공격이라 단언할 수 있다. 더구나 뱃속에든 태아에 대해서는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불쌍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다. 국가도 도와주지 않고있다.
어머니의 생명이 위협을 받지 않는데도 의도적으로 죽이고 있다. 이름없는 사람들,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이렇게 그들은 버려지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 사회의 단순한 제무일 뿐이다. 그러나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문제다. 도와주지 않으려고 알리바이를 찾고 있다. 숫자나 통계로만 처리하고 있다.
우리가 침묵하고 있기에 그들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교회는 더욱 단호한 지침을 제시해야 할때라도 생각된다. 수없이 많은 태아가 살해되고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다면 교회는 수없이 많이 말해야 할 것이다: 사람을 죽이지 말라, 죄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죽여선 안된다고.
교회가 「서로 사랑하라, 죽이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은 바로 창조주가 각 사람에게 인정해준 사랑을 그대로 전해주는 것 뿐이다. 교회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도와줄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이며 또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은 교회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태아나 버려진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누가 낙태를 해야할 만큼 또 아이를 버려야 할 만큼 극히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때도 하느님 앞에 양심대로 살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어른들의 인권만이 인권이 아니다. 태아나 어린아이도 똑 같은 인권이 있으며 그래서 보호되어야할 권리가 있다. 아이들을 경시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노인들을 학대하게 될 지도 모른다. 아이들이나 노인들은 사회에 필요없는 존재로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태아나 이미 태어난 아이의 품위를 지켜주고 옳은 양심을 보호해 주는 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며 인류의 장래와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 사명에서 교회는 하느님의 질서를 선언하고 양심을 깨우쳐야 한다. 교회는 각 사람의 초자연성의 표시이며 보호자라고 제 2차 바티깐 공의회에서 밝힌바 있다.
인간 존엄에 대한 문제에 교회는 분위기에 적응해서 타협하거나 신자들의 눈치를 봐서는 안될 것이다. 교회는 오직 하느님의 질서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처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크리스찬 가정을 이룩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남자들은 아버지가 되고 여자들은 어머니가 된다. 이것이 하느님의 섭리다. 이것은 가정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고귀한 학교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품위와 사랑을 위한 교육이 이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 사랑이신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누가 아버지 되기를 거부하고 어머니 되기를 포기한다면 그래서 태아를 죽이거나 아이를 내버리는 일이 계속된다면 이 사회는 하느님의 진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서독 주교단에서는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축일인 지난 12월 28일 정오에 모든 교구의 성당에서 15분간 종을 치도록 결정했다한다. 이로써 어려움에 처하고 폭력에 위협받고 있는 어린이들, 특히 태어나지 않은 생명들에 유대의 뜻을 밝히도록 호소한 것이다. 매년 수백만명의 어린이들이 악용당하고 굶주리고 죽어가고 있으며 수십만 의 생명이 낙태로 인해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이날 서독 신자들은 묵상과 기도와 미사참례를 함으로써 양심성찰을 하고 사회에 다시한번 이문제에 주의를 환기시킨 것이다.
우리 한국에도 이와 같은 회개와 반성의 날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모든 어버이들이 깊이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