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들은 다 애처롭다.”
생명에 대한 연민은 이승하(프란치스코·59) 시인이 시를 쓰는 원동력이다. 1984년 등단해 실험적이고 해체적인 시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이 시인은 이후 인간과 생명 문제에 집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가 어렸을 때 자연을 통해 경험한 것들이 지금은 많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과 마주하면서 저의 개인정서나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것보다 시를 통해 함께 고민할 거리를 던지고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인에게 문학은 ‘인간에 대한 연구’였고,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들이 시의 소재가 됐다. 제22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에 선정된 「나무 앞에서의 기도」 역시 이 시인이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생각하며 쓴 시 64편이 담겨있다.
‘나무, 생명’, ‘문명, 죽음’, ‘인간, 아픔’ 등 3부에 걸쳐 시인은 인간 문명이 불러온 파괴의 현장을 바라보며 느낀 안타까움과 참담함을 토로한다.
“인간은 자신이 편리하고자 자연을 훼손해왔고, 그 결과가 고스란히 재앙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어릴 적 즐겁게 놀았던 시냇물은 예전 같지 않고, 물장구치던 아이들도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목격하며 후손에게 물려줄 자연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펜을 들었습니다.”
이승하 시인은 처참한 현실 속에서 장밋빛 희망을 찾지 않는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때론 분노한다. 시인의 진심이 담긴 구절 하나하나는 사무치게 와 닿는다.
‘…구제역 번진 마을의 소들/떼로 살처분된다 핏물 지하수가 솟는다/땅이 울어 지진이 나고/저 화산 잠들 수 없어 하늘을 난타한다/뜨거운 피고름이 세상 멀리 흘러내린다’(‘비창 제3악장’ 중에서)
‘새만금 해창갯벌 밤에 와서 보니/갯내음이 예전 같지 않다/온갖 것들이 와 죽는 거대한 무덤/썩어가는 것들이/죽어서 더 많은 것을 살려내던/저 시원의 바다/미래의 바다를 만나/동진강과 만경강의 물이 만나 밤새도록 울고 있다…’(‘해창갯벌에 와서 바다를 보며’ 중에서)
세상을 향한 시인의 통렬한 외침 끝엔 따뜻함이 남는다. 그 따뜻함의 근원은 이 시인의 인생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저는 자가용을 타지 않고 주로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사람들로 빽빽한 지하철을 타면 불편할 때도 있지만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이 호흡하는 이웃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운전을 하지 않는 것도 배기가스로 인한 환경오염을 줄이고, 누군가가 다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지하철에서 만난 이웃과의 일화도 이번 시집에서 소개된다. 인간으로 인해 세상은 척박해졌지만, 그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을 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만삭의 여인이 들어선다/지하철 안이 보름달처럼 환해진다… 옆 칸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고/늙은 장애인이 들어선다/잠시 망설이다 사연 쓴 종이를/만삭의 여인에게도 건넨다/여인은 배 위에 종이 놓고 읽기 시작한다//사연은 아프다 삐뚤삐뚤 친필 글씨/여인은 다 읽더니/저 끝에서 뒤뚱뒤뚱 걸어오는/장애인을 바라본다/천원 한 장을 지갑에서 꺼내 건넨다//-아 아기, 수 순산하고, 해 행복하게, 사세요/고개 깊이 숙이며 인사한다/인사 받은 산모와 뱃속 아기가 웃는다/-고마워요, 건강하세요/사람들 모두 입가가 올라간다… 지하철 안이 봄날 대낮처럼 환해진다’(‘봄날 풍경’ 중에서)
가톨릭 신앙도 이 시인의 시에 영향을 미쳤다. 예수 그리스도를 ‘혁명가’라고 평가한 이 시인은 올바른 길을 개척하기 위해 실천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시를 통해 표현코자 했다.
이 시인은 “예수 그리스도는 당대 사회에 순응하지 않고 민중들에게 의식이 깨어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며 “그 모범을 따라 이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잘못된 것을 보면 거부하고 싸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수상 소감을 묻자 “자격이 없는데 큰 상을 받게 됐다”고 멋쩍게 웃으며 입을 연 이 시인은 “계속해서 문제성있는 시를 쓰는 시인으로 남아달라는 당부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열심히 세상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시를 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