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세계의 성예술 순례] 9 고딕의 세계 쾰른 대성당

김영섭ㆍ건축문화 설계 연구소장
입력일 2017-08-10 16:14:19 수정일 2017-08-10 16:14:19 발행일 1993-04-04 제 1849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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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감각적 석공예술품의 보고
합리성ㆍ조화 이룬 대표적 중세건축
성당정면과 측면의 화려한 아치형 스테인드글라스 절묘
숲처럼 곧게 올라간 소첨탑군 일품
네비게스에서 순례자 성당을 보고 쾰른으로 나오는 거리는 불과 한시간 남짓의 거리이다. 쾰른은 아직도 영어권이나 불어권에서는 콜론(cologne)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 말은 문자 그대로 로마시대의 식민시를 뜻한다. 이 오래된 도시명의 유래를 되집어보면 2천 년 전의 음산하고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잠시 들추어 보게 되기 마련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쾰른이 폭군 네로의 고향이 되게 하였던 그의 생모 아그맆피나는 권력과 색욕으로 가득찬 한마디로 세계 요부열전의 앞줄에 기록될만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권력의 핵심에 자리잡기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황제 곁으로 다가갔으며 그 길을 닦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거나 배반하기를 밥 먹듯 하였고 마침내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비가 되자 곧이어 자기 남편을 독살하고 숨겨논 사생아 네로를 어린나이에 제위에 오르게 하고 섭정을 시도하였다.

클라우디우스 생전에는 황제를 설득하여 자기가 살았던 고향마을을「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식민시 아그맆피나」로 명명하였다.

즉 퀼른이라는 이름은 이와 같이 긴 치욕의 이름이 줄어서 생긴 것이다.

후에 아그맆피나는 네로가 성장하여 황제의 권리를 주장하자 자기 아들인 네로까지 죽이려다 결국 도리어 자식에게 살해당하는 악녀의 말로를 맞이하게 되고 그 악의 씨앗인 네로 역시 그의 악명을 후세에 길이 남기게 된다.

쾰른 대성당은 쾰른 중앙역 바로 앞에 있다. 길이 1백44m 폭45m 첨탑 높이 1백57m로 고딕성당 규모로서는 유럽 최대의 성당이다.

1284년 초석을 놓았으나 자주 공사가 중단되어(1560년에서 1825년까지 중단) 6백여 년이 지난 1880년에 낙성식을 보았는데 울름(Ulm)대성당과 세계 최고의 첨탑 높이 경쟁을 하다가 결국 4m차이로 기네스북에 수록되는 기회를 놓치고만 치기어린 건축공사 경과가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고딕의 세계에 대한 일반론(introduction)을 잠시 언급해 보면 한마디로 고딕(Go-thic)이라는 말은 로마를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해 왔던 로마인들이 붙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즉 중국 사람들의 중화사상처럼 자기나라 외의 나라와 민족을 모두 오랑캐라고 하는것 처럼(우리나라도 동이 : 활 잘쏘는 동쪽 오랑캐라는 뜻)고딕이라는 용어는 서고오트(Visi Goth)또는 동고오트(Oster Goth)와 같은 이민족에 대한 지칭에서 비롯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미술사가 지오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sari)조차도 프랑스풍을 고티풍(Msniere di Goti)으로, 고딕 건물과 예술을 프랑스 양식(Opusfrancigenum)으로 불렀던 것을 보아도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고딕건축사가 존 하웨이의『자연에 내재되어 있는 정신이 필연적으로 나타난 것이 고딕이다』라는 말의 형이상학적 표현을 음미해보면 대체적으로 고딕건축과 예술이라는 것은 헤브라이즘이라는 동방적 요소에 북방적 이교성이 융합 내지는 통합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문화적 결실로 보여진다. 즉 지극히 합리적인 고딕건축의 구축방법과는 달리 이것으로 형성된 고딕교회의 내부공간은 신비함과 이것을 더욱 승화시키는 빛의 연출로 가득 차 있으며 바로 이 빛 때문에 어느 시대보다도 스테인드글라스라는 유리화 예술이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고딕건축에서 건물이라는 실체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재료는 돌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도저히 돌의 광물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현란한 조각과 석공예품들을 교회의 안과 밖에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초월적, 초감각적 표현을 시도하려는 당시의 신학과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보다 쉽게 말해서 돌이라는 견고한 재료의 본질을 완전히 탈각하여 물질과 감각을 이상적으로 결합시킨 완전한 정신적 표현을 시도한 것이다.

이전의 양식인 로마네스크와 비교해보면 고딕 정신이 얼마나 이상주의적이고 초월적(Trangendental)인가를 알 수 있는데 로마네스크 시기에 성당은 도시의 상징으로서(duomo, domus)역할, 신학적으로 우주의 주재자로 군림하시는 하느님, 경외의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을 경배하는 장소로서 즉 하느님 백성의 집이었으나 고딕시대에 들어와서는 하느님의 집(domusdei)그 자체 또는 표상으로서 교회건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교회 공간은 하느님의 신비와 만나는 법열이 느껴지도록 꾸며졌으며 이러한 이유에서 자연 환경에 맞추어 교회를 짓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신학적 관념론과 신앙심만으로 장소가 선택되고 건축되어졌던 것이다.

고딕건축은 당시의 스콜라 철학뿐만 아니라 성음악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상드니 수도원 대성당의 기둥 배열과 간격은 당시의 음악적 세계관인 조화의 우주(Mu-sica Mundana)라는 음악적 질서와 조화를 반영한 것이다.

독일교회에서 고딕건축의 외형적 특징을 살펴보기에는 쾰른 대성당이 안성맞춤인데 그 이유는 쾰른 대성당이 최초의 프랑스 고딕양식을 도입한 것이기도 하지만 소위 초기 고딕시기의 고전 3대 성당 샤르뜨르(Shart-res, 1194), 랑스(Rheims, 1211), 아미앙(Amiens, 1220)중의 하나인 아미앙 대성당의 플랜을 모방하여 발전시킨 역사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고딕건축의 외관은 무엇보다도 수직적 앙천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 그 전후의 건축인 로마네스크와 르네상스 양식과는 구분된다.

수직적인 내부공간은 위로 갈수록 창이 많아지며 창을 많이 내기 위하여 자연히 상부벽은 하중을 분산시킬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것이 측면 그림에서 보는 것같은 공중비계(Flying Buttress)이다. 공중비계의 연속 위에 쌓여진 각종 소첨탑(Pinacle, Stee-ple, Spire)들은 정말 숲의 곧게 뻗어 올라간 나무처럼 보인다.

성당의 정면과 측면에는 장미창(Rosewindow)으로 불리우는 화려한 원형내지는 아치형의 대형창이 설치되고 이 장미창의 꽃잎을 분활하는 장식격자(tracery)가 놓여진다. 내부천정은 포인티드 아취(pointed Arch)를 구성하는 구조체인 석재 볼트(Rib Vsult)가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있으며 그 교차점의 중앙에는 홍예들(Arch Vaussoirs)이 자신의 수직 무게를 최초로 수평으로 전달하여 쐐기처럼 박힌 조각난 돌들이 서로 맞물리며 천정의 무게를 기둥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얼핏 보면 거의가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고딕교회의 특징은 다른 나라에서 다시 열거하기로 하고 교회 밖으로 나와 교회 건물과 인접하여 있는 왈라프 리하르츠 미술관과 루드비히 미술관을 들러 본다. 지난 1986년 개관한 이 미술관 역시 서유럽 최대 규모의 미술관이다.

이 건물군의 지하에 옛 로마시대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출토된 로마-게르만 역사 박물관이 함께 있는데 2천 년 전의 로마시민들의 삶을 시공을 넘어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왈라프 리하르츠 미술관은 14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미술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알브레히트 뒤러, 렘브란트에서부터 보나르의 그림까지 여러 시대의 회화를 볼 수 있다.

루드비히 미술관은 현대 미술관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데 20세기 초 현대 미술사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다리파(Dis Briche)와 같은 독일 표현주의 공부를 할 수 있는 귀중한 장소이다.

고색창연한 대성당과 현대식 미술관 건물이 석양빛을 받고 자매처럼 정답게 나란히 서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내 기억의 창고 깊숙히 자리잡게 되었을 때 나는 대성당 앞 광장으로 다시 나와서 첨탑 길이만큼을 걸어보았다.

1백57m라는 고딕의 스케일을 재어보려는 듯 ….

김영섭ㆍ건축문화 설계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