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만난 친구들이 온통「떠나자」고 떠들어댄다 북구라파의 생소한 도시에서 태평양의 섬까지 남편과 자식으로부터의 도피에서 자신에로의 침잠에 이르기까지, 어차피 떠들다 접고말 얘기일테이지만 인생의 10월을 앞둔 40여인들의 애잔한 슬픔이 묻어있는것같아 계절이 어느새 가을문턱을 넘어섰음을 느끼게 한다.
자잘하고 보잘것없는 고달픈 삶을 굳이 보상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인생의 덧없음과 그저 그렇고 그런 일상에 한줄기 청량한 가을바람을 맞고싶은 부질없는 음모 (?) 가 밉지않게 보였다. 그래서, 가을은 떠남에 대해 이야기해도 좋을것 같다.
삶이 여정이라면 우리는 매순간의 떠남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한순간을 맞이한 바로 그때 다음시간의 기다림 앞에 마주해야 통해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다.
기억조차없는 어머니 가슴과의 작별이 있은후 부터 정든 집과 고향,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해야했으며 부모나 형제의 죽음을 보며 수많은 시간과 공간과 추억으로 부터도 떠나야했다. 그속에는 자연스럽게 떠나고 맞은 성장의 과정이 있는가하면 사춘기의 아픔처럼 삶의 의식으로 치러내야 했던 성숙의 과정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축복과 응원과 가슴설레던 포부, 그보다 더 큰 가능성이 자랑스럽던 젊은날의 떠남도 지나고보면 길고긴 시간의 행렬속에 묻히듯 떠밀려온 것이었음을 가을은 되돌아보게 한다.
자신에 찼던 힘찬 발걸음도 어느새 두려움에 주춤거리게 되고 탑을 쌓을것같던 보람마저도 속절없이 무너져내리는 현실을 지켜보게 하는것도 가을이 주는 교훈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가을엔 떠남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것 같다.
우리는 날마다 떠나야한다. 못된 습관과 고침에서 자신을 떼어내고,그릇된 이기심과 헛된 자만에게 결별을 선언해야하며, 온갖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떠나는 연습을 해야한다.
떠남은 선택이며 결단이다. 떠남은 이전의 것으로부터 벗어남이며 가진것을 버림으로써만 새것을 얻을수있는 포기의 과정이었음을 많은 떠남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자신의 조각조각들읕 순간순간 포기함으로써, 떨어져 땅에 묻히는 낙엽의 겸허함과 잎을 다 버리고 선 겨울나목의 아름다움을 배울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육신이 우리를 떠나갈때 더이상 버릴것없는 자유와 기쁨으로 한줄기 미소를 띨수 있다면 그때,힘겹게 떠나왔던 지난 삶속에 위로와 축복의 약속이 있었음을 깨달을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것인가. 「떠나라」는 말씀에 묵묵히 떠났던 아브라함의 믿음과,「가라 죄짓지말라」는 용서의 말씀으로 자유로와진 여인과,이땅의 순교자들의 빛나는 죽음이 떠오르는 계절에, 우리는 다시한번 생각해야 하리라. 자신을 송두리째 변화시키기 위해선 날마다 끊임없이 떠나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