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순례자 가운데 어떤 이는 미래를 고민하려고, 혹은 단순히 걷는 것을 좋아해서, 혹은 참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 왔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모두 하나같이 목마른 사람들로서 자신이 살던 자리가 싫고 힘들어 탈출한 이들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까미노가 여행이나 트레킹이 아니라 ‘순례’라는 것이다. 이 길에 들어선 순간부터 ‘뻬레그리노’(Peregrino), 곧 ‘순례자’가 된다. 순례는 ‘목적지를 향해 걷는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그저 유람 혹은 방랑일 뿐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목적지다. 바로 거기에 성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의 첫째 목적은 ‘야고보 사도의 유해를 참배하러 가는 것’이다.
사도 성 야고보는 예수님에게 드러난 하느님 사랑에 매료된 사람이다. 전승에 따르면, 부활하신 주님의 복음 선포 명령에 따라,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거쳐, 당시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한 스페인 북서쪽 끝에 있는 ‘갈리시아’ 지역과 기원후 40년경에는 스페인 ‘사라고사’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다.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왔다가, 기원후 44년경 열두 사도 가운데 제일 먼저 주님을 위해 순교의 피를 흘렸다(사도 12,1-2). 순교하기 전 사도는 스페인에서 자신의 제자가 된 두 사람에게 자신의 시신을 스페인 땅에 안장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들은 사도의 유해를 배로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 모시고 들어와 우여곡절 끝에 안장했다. 그 후 여러 이유로 사도의 무덤이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가, 9세기 초 ‘펠라지오’라는 은수자가 주님의 계시를 받아 별빛이 비추는 땅에서 사도의 유해를 기적적으로 발견하였다. 그 자리에 장차 현재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될 경당이 세워졌다. 이때부터 전 유럽에서 수많은 신앙인들이 순례를 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생긴 순례길이, 한국인 순례자들이 많이 걷는, 프랑스에서 피레네 산을 넘어 스페인 북쪽을 거쳐 오는 ‘프랑스 길’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모셔진 야고보 사도의 유해는 단순히 죽은 이의 유골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사랑의 증거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의 근본적인 목적은 ‘야고보 사도를 통해 드러난 주님을 만나는 것’이다. 예수님이 아니면 이 길은 제주도 올레길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까미노는 ‘정직한 길’이다. 온 몸으로 걸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강한 햇볕이 내리쬐고 세찬 비가 들이닥쳐도,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불고 앞이 안보일 정도로 눈이 쏟아져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걷는다. 발에 물집이 잡히고 온 몸이 빈대에 물리더라도, 잠자리가 불편하고 먹는 것이 부실해도, 그 고통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걷는다. 꼭 필요한 것만 짊어지고 걷는다. 그 외의 것은 욕심이다. 그래서 온전히 ‘내어맡기는 길’이다. 인간적인 계획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하루하루 그분 손에 맡긴다. 누굴 만날지, 어디까지 갈지, 무엇을 먹을지, 어디서 잘지 모른다. 그저 내어맡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