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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딸과 재봉일/정태주

정태주ㆍ안나ㆍ대구 본리본당
입력일 2017-06-04 10:24:22 수정일 2017-06-04 10:24:22 발행일 1992-05-10 제 1804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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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엔 손재봉틀 한대가 안방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 중3인 아들이 국민학교에 취학하기전 하도 개구장이라 금방 사온 새바지라도 입고 나가면 시멘트 바닥에 마구 문질러서 바지 무릎과 엉덩이에 구멍이 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옷을 집에서 수선해 입히려고 장만한것이 손재봉틀이다.

처음 사서는 바지도 깁고 각종 덮개도 만드는 등 서툰 솜씨로 활용을 했으나 제구실을 못하고 쉬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딸아이가 중학교에 가게되고 학교에서 블라우스, 스커트를 축소판해서 손으로 만드는 걸 보았다. 재봉틀로 하라고 하자 손으로 해야한다고 한다. 학교엔 아예 재봉틀도 없고 입시위주의 교육이라 그런지 손으로 만드는 것도 학교에서 하는게 아니라 숙제로 집에서 해오라니 거의 엄마들이 대신 해준단다.

허나 딸아이는 나한테 해달라는 말없이 꼼꼼이 손으로 만들다 오랜시간 밤을 새웠다.

우리가 여학교 다닐적엔 재봉틀이 있는 재봉실이 있어 재봉틀일도 학교에서 배웠다.

지금 학교는 재봉틀을 없애고 손으로 하니 입시공부때문에 없앤 재봉틀덕분에 손재봉일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딸아이는 옷 만드는 것이 즐거운지 그렇게나마 배운 솜씨를 활용하려고 방학때 옷감사러 시장에 가자고 졸라대어 서문시장에 가게 되었다.

대구가 섬유도시라 그런지 서문시장엔 흠집이 약간씩 있는 짝투리천 파는 곳이 있는데 굉장히 싸다. 면직물 세마정도 되는 천을 삼천원이면 구입할 수 있으니…. 딸아이는 배운것을 응용해서 플레어형치마에 소매도 플레어형으로 달아 편한 원피스를 재봉틀과 하룻동안 씨름하더니 만들어 입었다. 고2가 된 딸이 하루는 밤11시까지 공부를 하고는 나의 점퍼스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딸은 이튿날이 공휴일이라 늦잠을 자도 된다며 푸근한 마음으로 재봉일에 몰두했다. 만들다가 나를 일으켜 세워 입어보라고 하길 무려 열번. 입어보면서 모녀가 서로 쳐다보며 옛날 내가 딸의 스웨터 뜨게질을 하며 딸에게 입혀보길 수십차례 한 기억을 떠올렸다.

드디어 새벽4시가 지나 무려 다섯시간 걸려 내옷이 마무리되었다. 셔링 주름을 한 치마에 앞판을 위로 붙이고 두개의 끈으로 멜빵을 달았다. 서툴긴 해도 편안해 딸이 만들어 준 홈웨어를 요즈음 요긴하게 입니다.

학교에선 비단 재봉실 뿐아니라 탁구실도 선수가 아니면 이용할 수 없다니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이 없는 교육현실이 안타깝다.

재봉틀이 있는 재봉실을 갖추고 틈틈이 탁구 등 운동도 할 수 있는 교육제도가 부활했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정태주ㆍ안나ㆍ대구 본리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