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시사진단] 묵시록에서 창세기로/정홍규 신부

정홍규 신부ㆍ대구대교구 가정·생명·환경담당
입력일 2012-03-19 17:55:03 수정일 2012-03-19 17:55:03 발행일 1996-06-23 제 2008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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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되어야 할 위대한 공업주의 신화
현대는 다른 어떤 세기말의 시대보다 불안이 다층적으로 중첩되고 있다. 신학자인 폴 틸리히는 세기말의 불안의 3가지 얼굴을 말한 적이 있다.

생태학적 위기

이 얼굴들은 3시대의 말기 현상으로 드러나는데 즉 고대 말기는 존재적 불안인 죽음이 지배적이었고, 중세말기에는 도덕적 불안인 죄가 지배적이었고, 근대 말기에는 정신적 불안인 무의미 또는 공허감이 지배적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 모던의 제3의 천년을 앞둔 불안은 그 전 시대의 세기말의 불안과 전적으로 다른 생태학적 위기에 따른 불안이다. 소련의 경우 체르노빌 대재난과 1991년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 이후 종말에 대한 공포감과 녹색 유토피아 종말론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그야말로 서양의 기술 중심의 세계관의 종언과 해체가 새로운 후천 개벽설, 물고기좌에서 물병좌로 이동하고 있는 문명 전환기에 따른 불안과 불확실성, 상대주의가 세기말을 뒤덮고 있다.

기계의 시대가 급속하게 막을 내리고 있다. 기계의 시대는 우리의 물과 공기를 오염시켰고 열대우림을 파괴했으며 하늘의 오존층에 구멍을 내었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농업과 지역공동체의 지혜를 파괴했고, 우리의 신세대들을 소비와 소유, 사치와 낭비로 몰아넣었으며 우리를 편리함에 대한 중독과 영혼을 메마르게 했을 뿐 아니라 종교에 있어서도 신비주의와 우주를 발탁했다.

재앙의 징표들

지금 지구 생태계의 파괴는 극에 달했다. 지구의 적자는 두 번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영원한 적자이다. 지구 종말의 묵시록은 10년이나 남았을까?

해체되어야 할 것은 위대한 공업주의의 신화이다. 최근에 여기저기에서 잇따라 터지는 사건들은 공업사회의 붕괴를 드러내준 징표들에 불과하다. 머지 않아 페놀사건보다 더 무서운 재앙들이 속출할 것이다.

한탄강과 임진강의 고기 떼죽음, 낙동강의 악성 폐수 유입, 한탄강 폐수 무단 방류, 팔당댐 오염, LG의 시프린스호 바다오염, 구미와 안동의 신공단 조성, 위천공단, 무지막지한 원전건설, 오존주의보와 에너지 위기 등을 또다시 기계기술적 패러다임이나 열역학적 접근으로만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아직도 공업문명의 신화에 매달린다.

이를 테면 어떤 기술과 방법으로 지금의 자동차 공해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대기업은 신품승용차를 만들고 정부는 도로를 만들어 주고 언론은 교통정보를 제공하고 국민은 이 차를 소비하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무서운 핵전쟁이 아니라 이미지 혁명, 자본주의 대기업 제국의 경제논리이다. 다국적 기업은 지구상의 모든 자원 정보를 독점하여 가난한 나라는 생태학적으로 더욱 빈곤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안이 있는가? 새로운 21세기 세계관이 필요하다. 제3의 영성이 요청된다. 하느님과 인간에 관한 성찰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관계의 성찰에서 지구와 인간의 관계 성찰로 나아가는 창조 영성, 우주론적 영성, 예식, 전례, 미학 등이 필요하다고 본다.

신 세계관 필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영성과 생활의 결합 그리고 영성과 물자의 결합으로써 생산공동체 건설, 제레미 리프킨이 제시한 대안 즉 저엔트로피의 삶과 제3부문의 시민연대, 동북아시아의 생명공동체, 초국적 시민 네트워크, 초대교회의 복음적 사회주의 공동체, 지역연대를 통한 생명지향적 농업 등 탈 자본주의 공동체들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새 영성 제시해야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교회는 희년영성, 즉 생태정의를 새로운 시대의 영성으로 불안에 떠는 현대인들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정홍규 신부ㆍ대구대교구 가정·생명·환경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