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어버이 성가대 / 정달영 1

정달영ㆍ언론인ㆍ서울 연희동
입력일 2011-05-10 14:05:45 수정일 2011-05-10 14:05:45 발행일 1982-04-11 제 1300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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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가 대원은 올해 나이가 예순셋이다。그러나 그 말이 곧이 들리지 않을 만큼 그 분은 꼿꼿하기가 청년같다。

언제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윗층 성가대식에 나타나 훨씬 젊은 동료들 가운데에 섞여 앉는다。

시간이 늦는 일도 없고 연습에 빠지는 일도 없다。 더구나 올 봄부터는 본당의 신협 이사장직을 맡았으면서도 그분은 여전히 가장 출실한 성가 대원이다

대장은 과학자다。한문적으로 원숙한 단계에 이르러 전공 분야에서는 국제적으로도 알아주는 교수이고 요즘 한창 연구 업적을 쌓고 있는 50대의 신사다。성가대의 대장을 맡아 여분의 시간을 뺏기는 것이 사실 이지만 언제나 다른 대원들에게 깎듯한 모범을 보인다.

대원들 - 특히 남성의 얼굴은 매우 다양하다。직업만 해도 상인ㆍ교수ㆍ의사 군인ㆍ공무원ㆍ교사ㆍ은행원ㆍ사장ㆍ회사원ㆍ신문기자 등이 고루 망라돼 있다。

본당 안에서 사목 위원으로 일하는 「회장님」들도 많고 연령으로는 30대에서 60대까지 분포돼 있으나 주력은 40대다。

남성 대원들의 가장 큰 특징은 상당수의 음치가 섞여있다는 점이다。성가대원의 상당수가 음치라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인데 사실이 그렇다。실제로 어떤 대원은 소리는 내지 않고 입만 벌리는 경우가 있었다는 소문이다

「어버이 성가대」가 이별단 성가대의 이름이다。본래 어머니 성가대가 있어서 오랫동안 여성(女聲)만의 화음을 이루어 오던 것을 지난 해 몇몇 남성들이 가세 하면서 이름을 바꾸어 새로 발족한 것이다。

처음 개편을 시도했을 때는 남성들의 참여를 얻기가 힘들었다。그래서 우선은 이 성가대가 남녀 혼성 합창단임을「보여주는」일부터 필요했다. 때문에 상당수의 음치가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초청」되었다。초청의 방법으로는 엉뚱하게도 테니스가 이용되었다。

아버이 성가대를 만드는데 주역을 맡은 형제는 구력 20년이 넘는 테니스 선수 였다。그는 먼저 본당 테니스대회를 열고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로 테니스 동호회를 만들면서『테니스 동호회원은 자동적으로 아버이 성가 대원이 된다』는 기발한 규약을 칭안해 냈다。이렇게 해서 테니스 한번 치려고 만났다가 억지로(?) 성가 대원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막상 어버이 성가대가 발족하자 생전 처음 중창 악보를 대했다는 음치 형제들이 합창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는 이변이 벌어졌다。중학생때 학교 교사로부터「음치」라는 말을 들은 뒤 단 한번도 노래를 부르려 하지 않았다는 한 대원은 『내가 음치가 아님을 이제서야 발견했다』고 흥분 했다。그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베이스 실력으로 성장했다。

어떻든 악보의 어떤 부분이 베이스며 테너인지 조차 분간할 줄 모르던 사람들이 어느 틈엔가 4부 합창의 화음을 훌륭하게 만들어 냈다。차름 숫자도 늘어 갔다。청년 성가대가 발표회를 가졌을 때는 당당하게 찬조 출연하여「관중」앞에 서기도 했다。

사순절 들어서면서부터 어버이 성가대는 부활 축일 준비로 청년 성가대와 합동 연습을 벌인다。 양쪽을 합쳐 90명이 넘는 대식구다。합쳐 놓고 보니 부모와 자녀 한가족이 모두 성가 대원인 집도 있다。10대 고교생에서 60대 할아버지까지 그야말로 노소 동락이다. 「본당공동체의 해」는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닌가?。

이 글을 쓰는 사람은 불행하게도 음치를 면하지 못한 채 스스로 도중 하차를 결심해야할 처지에 몰렸다。이제 더 이상「머릿수」채우는 일은 필요 하지 않게 되었기 떄문이다。

부활축일의 대합창이 기다려진다。

성가대석에서 「부르는 대원」로서 그 날을 맞이 한다면 아마도 나는 눈물을 참기 어려울 것이다。감동의 아니면 서운한 눈물을。

■지금까지 마산교구 합천 주임 신은근 신부님꼐서 수고해 주셨습니다。이번호부터는 언른인 정달영씨 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정달영ㆍ언론인ㆍ서울 연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