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봉두완이 바라본 오늘의 세계] 꿈꾸는 신세계는 어디에 있나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입력일 2011-02-14 12:00:00 수정일 2011-02-14 12:00:00 발행일 2000-04-09 제 2195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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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사회를 예측하는 작가와 소설로 우리는 영국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손꼽는다. 학창시절 탐독했던 「유토피아」의 장면과 「멋진 신세계」로 번역된 『브레이브 뉴 월드』(Brave New World)의 장면들을 지금도 떠올리곤 한다.

물신주의에서 해방된 세계

『모든 주민은 하루 6시간씩만 일하면 된다. 허랑방탕한 소비만 일삼는 귀족과 부자들까지 모두 생산에 참여하면 하루 6시간 노동으로도 필요한 것을 생산하기에 충분하다. 생산된 물품은 병들고 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나눠주고 나머지는 골고루 나눈다. 남는 물자가 있으면 기근이나 질병으로 고통 당하는 이웃나라 주민들과 나눠 갖는다. 금, 은과 같은 귀중품은 변기 등 하찮은 것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그렇게 하찮은데 쓰이니 탐할 이유도 없다』

「유토피아」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 미래의 인간사회인가. 선거로 군주가 선출되고, 사유재산과 화폐제도가 폐지되며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 놀고 먹는 유한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병들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우선권을 주는 가슴 뜨거운 공동체, 금·은과 같은 귀중품을 변기 만드는 데나 사용하는, 물신주의에서 해방된 새로운 세계.

1516년 토마스 모어가 그린 이 같은 이상향은 500년 세월이 지났어도 이 세상에는 없는 꿈의 나라로 여전히 남아있다. 인간의 탐욕과 지배욕이 존재하는 한 그 꿈의 나라는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며 결국 공상적인 이상향이 되어버릴 것이다.

「멋진 신세계」도 인간이 만들 수 없고, 만들어서는 안될 세계라는 점에서 허황되기는 마찬가지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불행의 원인이 되는 고통, 빈곤, 갈등, 범죄, 부도덕이 모두 퇴치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복제기술로 태어나는 인간은 아예 유전인자에서부터 그런 파괴적 인자(因子)가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사회는 과학의 힘만을 믿는 지배자가 있음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유권자가 만드는 유토피아

나이들어 다시 읽게 된 이런 책에서 우리는 세상 저편의 이상향이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실현될 수 없고 사람을 인위적으로 조정해서 만들어내는 유토피아는 결코 진정한 멋진 신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같은 깨달음은 참으로 씁쓸한 것으로 허망한 절망감에까지 이르게 한다.

지금의 선거판을 보라. 세계는 정신없이 돌고 무섭게 변하며 새로운 기술은 끊임없이 분출되고 있는데 우리의 정치판은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지역주의의 미친 바람이 휘몰아 치고, 병든 유행가가 다시 불려지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전국구 공천작업이 무원칙하게 진행된 결과 당내 갈등이 표면화되는가 하면 밀실공천의 시비가 다시 일고 있다. 전국구 비례대표 공천이 총재의 선임용 내지 당의 ‘장식용’ 또는 ‘돈줄’로 여기는 사고와 자세의 변화가 없는 한 민주화는 공염불이 될 뿐이다.

선거전이 아니라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다. 여야 정치권이 체면도 염치도 벗어던진 채 독설과 막말을 쏟아 놓고 있는 것이다. 게임의 룰에 따라 공정한 승부를 가리기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슨 수를 쓰든 이겨야한다는 강박관념만이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렇게 총선전이 살벌한 전쟁터로 변질된 것은 각 정당이 이번 총선결과가 차기대권의 향방을 가르는 시금석이 된다는 인식아래 사활을 걸고 원내 1당 쟁탈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4·13 총선판이 우습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너도 나도 대권도전 선언으로 마치 용(龍)들의 전쟁 양상이다. 일부 유력 정당 수뇌부에 이어 이번에는 군소정당 후보까지 다음 대권을 들먹이고 있다.

모두가 자신이 떠오르는 태양이며 새 시대를 열 지도자라고 말한다. 모두가 유토피아를 만들 것처럼 말하고 모두가 멋진 신세계의 주역처럼 행세한다. 그러나 이것은 큰 착각이다. 자신의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처지에 어떻게 대권을 운운하는가. 일종의 착시현상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16대 총선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납세, 병역신고, 그리고 앞으로 있을 전과기록공개가 우리 선거문화를 한 단계 높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는 신세계,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백수건달이나 병역기피자가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나서는 우스꽝스런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선거에서는 보여주어야 한다.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