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스코(성 요한 보스코) 성인은 1815년 8월 16일 이탈리아 사르데냐 왕국 피에몬테 지방의 베키(Becchi)라는 작은 마을 한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태어났다.
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탓에 집안일, 들일을 거들고 심지어 이웃집 머슴살이까지 하는 힘든 유년기를 보냈지만 늘 쾌활했고, 재치가 넘쳤다. 또 가난 속에서도 자녀들의 종교 교육에 특별히 관심을 쏟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신앙에 남달리 충실했고, 기도생활도 열심이었다.
결국 돈보스코는 1835년 신학교에 입학, 6년 뒤인 1841년 6월 5일 26세의 나이로 사제품을 받았다. 토리노 시내에 위치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은 그는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고, 영혼을 구하는 일이라면 그 어떤 고통도 감수하고 자신을 낮추겠으며,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의 사랑과 온유의 덕을 본 받겠다’고 약속했다.
사제 돈보스코는 모든 노력을 다해 자신의 이 결심을 실현시켜 나갔다. 이후 그는 도시 변두리에서 노동착취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접했고, 성당 제의방에서 한 고아 소년도 만난다. 이러한 경험이 그를 평생 청소년과 젊은이들을 위해 일하도록 이끌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많은 청소년들이 집도 일도 없이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는 당장 청소년들을 모아 글과 교리, 기술도 가르치고 먹을거리를 장만해줬다. 저술과 출판활동으로 자신의 이념을 전파하는데도 온 힘을 쏟았다. 그가 남긴 저서만도 2000여 권이나 된다.
“나는 청소년 여러분을 위해 일하며, 공부하고, 나의 생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돼있습니다.”
그는 강요와 체벌이 아닌 오직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했다. 아이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들에게 극진한 사랑을 베푸는 돈보스코에 완전히 매료됐다. 그와 아이들 사이에는 종교적 유대감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그는 이어 그를 따르는 청소년들 중 미래에 자신의 역할을 대신할 이들을 찾아냈다. 이들을 중심으로 1859년 살레시오회를 창설하고, 선교사업을 전개했으며, 1869년 교황청으로부터 수도회 인가를, 1871년 회헌 인가를 받았다. 그 이듬해에는 소녀들의 교육을 위한 살레시오 수녀회를, 1876년에는 살레시오 협력자회도 설립했다.
평생토록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헌신했던 돈보스코는 1888년 1월 31일 하느님 품에 안겼다. 그는 자신의 임종을 지켜보던 이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 아무에게도 악을 행하지 마십시오! 나의 아이들에게 천국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해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돈보스코는 1929년 시복, 1934년 4월 시성됐다. 그는 청소년교육의 선구자요, 편집자와 교정자의 수호성인이다. 또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청소년들의 아버지요 스승’으로 공식 선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