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달자의 주일 오후] 어머니에게 돈을 드리고 싶다

신달자 시인
입력일 2009-05-26 16:07:00 수정일 2009-05-26 16:07:00 발행일 2009-05-31 제 265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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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진작 나를 버렸어야 했다. 아니, 나를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어머니의 딸로서, 한 인간으로서 그 어떤 희망이 보이지 않았을 때에도 어머니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 아니,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만약 지금 대추알만한 성공을 거둔 것이라면, 그건 끝까지 나를 믿어준 어머니의 집념 덕분이다. 어머니는 늘 ‘불타다 남은 죽은 나뭇가지에도 반드시 싹은 튼다’고 했다. 장난으로라도 ‘넌 이제 틀렸어’란 말씀은 하지 않았다. 딸자식에게 무슨 믿음이 그리 깊었던 것일까. 그거야말로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힘이 아닐까. 어머니는 제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난 우리 어머니로부터 배웠다.

그런 어머니께 난 아무것도 해 드린 게 없다. 늘 속만 푹푹 썩였다. 어머니는 몸이 무거워 늘 택시를 타고 다녀야 했다. 어머니의 용돈은 대부분 택시비와 목욕탕 때밀이 값으로만 들어갔다.

그때 만약 내가 지금처럼 자가용을 몰고 어머니를 드라이브라도 시켜드렸다면, 어머니는 누구도 부럽지 않은 행복한 얼굴로 ‘하하’ 웃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어머니를 웃게 해드릴 힘이 없었다.

전전긍긍 살림하며 아이들을 키우느라 내 주머니는 늘 몸살을 앓았다. 천 원짜리 한 장을 갖고 몇 번을 겨눠야 했다. 그렇게 돈에 절절매여 사느라 난 어머니께 용돈 한 번을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아니, 거의 드리지 못했다.

만 원짜리 한 장을 드리기 위해 언제나 망설여야 했고, 그것도 드릴까 말까로 내심 갈등을 겪어야 했다. 나는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생각을 하면 눈에서 피눈물이 흐른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나는 30년 동안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울어야 했다.

지금도 때때로 어머니가 그리워 몸이 오그라든다. 내 차에 어머니를 태우고 내가 직접 운전을 해 고향에 내려간다면, 어머니는 아마도 숨도 쉬지 못할 것이다. 그 벅찬 감정에 결국은 아이처럼 엉엉 울고 말 것이다.

내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강의를 하고, 상을 받으러 나가고, 텔레비전에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을 보신다면, 아마 기절하실지 모른다. 지금 내 지갑에 만 원짜리가 수북하게 들어 있는 것을 아신다면, 그래서 그 돈을 쑥 뽑아 어머니께 드린다면, 어머니는 몸이 얼어 버릴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에 돌아가셨다. 그 애통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1988년 「백치 애인」과 1990년 「물위를 걷는 여자」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을 때, 난 제일 먼저 어머니를 찾아가 10만 원짜리 수표 석 장을 무덤 앞에 묻었다. 석 장, 넉 장, 열 장이라도 묻을 수 있었다. 늦게나마 어머니께 돈을 드리고 싶었다. “엄마! 이거 내가 번 돈이야.”

어머니는 아마도 저승에서 수많은 이웃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을 것이다. 내 딸이 번 돈이라며 어깨를 쫙 펴고 딸 자랑을 하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생전 딸 자랑 할 것이 없었다. 우리 어머니같이 자랑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그것을 못하고 돌아가셨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께 용돈을 드리는 꿈을 꾼다. “엄마, 돈 필요해? 돈 좀 드릴께”라며 지갑에서 돈을 꺼내 뭉텅이째 어머니 치마폭에 확 던지고 싶다. 어머니가 단 한 번이라도 황홀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많은 돈을 드리고 싶다.

어머니가 미치도록 그립다. 평생 진심으로 날 위해준 우리 어머니가 보고 싶다. 어렸을 때는 그 관심과 사랑이 귀찮아 어머니께 싫은 소리도 참 많이 했다.

내가 힘겨워 할 때면 모시이불을 살며시 덮어 주면서 ‘아무 생각 없이 잠이나 자라’며 부채를 살살 흔들어 주시던 어머니. 내가 좋아하는 부추전을 부쳐주면서 ‘너만 먹어라’, ‘어서 많이 먹어라’하고 등 두들겨 주시던 어머니.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제발 누워 쉬라’고 말씀하시던 우리 어머니….

이 세상에서 운명을 같이 할 사람, 혹은 죽음을 나눌 사람도 이렇게는 해줄 수 없으리라. 오직 어머니뿐이다. 너무 피곤하거나 몸이 아플 때면 나는 지금도 어리광을 부리며 혼잣말을 한다.

“엄마! 나 아파! 아파서 죽겠어 엄마!!”

신달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