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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내 탓이오

입력일 2008-02-24 10:10:00 수정일 2008-02-24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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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란 옛말이 있다. 심리학 용어로 ‘방어적 귀인(Deffensive Attribution)’인데 실패했을 때는 남의 탓으로 돌려야 자존심이 상하지 않으며, 잘 됐을 때는 자기 공으로 치부해 자존심을 고양한다는 의미다. 곧 모든 잘못의 근원을 자신보다는 이 사회와 다른 이들에게 전가하려는 이기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됐다.

우리 국민들은 ‘입바른 소리’하길 즐긴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회 곳곳의 잘못된 현상에 대해 너도 나도 정부와 해당 기관을 탓하며 열변을 토한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고 만다. 사람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 이 사람이 어떻고 저 사람이 어떻다 얘기들을 많이 한다. 침을 튀기며 그 사람을 해부한다. 그렇게 비난하는 자신도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단 사실을 정녕 모르고 있진 않을 터인데 말이다. 누가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건전한 비판이나 제안은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이 사회를 살찌우는 토양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진정 그런 의도인지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자신도 갖고 있는 결점인데 남의 결점을 비난하고 채찍질하는 것을 어떻게 옳은 일이라 하겠는가.

정치판은 더 심각하다.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 할 정치인들은 당리당략과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헐뜯기 급급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으며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은 보이질 않아 뒷맛이 영 개운하질 않다.

최근 온 나라를 비통에 잠기게 했던 숭례문 방화의 경우 개인적인 불만이 불씨가 되어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동안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불만과 분노를 사회 탓, 남의 탓으로 돌리며 이처럼 최악의 선택을 하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지난 1990년 전개한 ‘내 탓이오 운동’을 기억할 것이다. 이 운동은 한국교회는 물론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내 탓이오 운동’은 신뢰회복 정신을 바탕으로 반 생명적이고 반 사회적 현상이 내게서 비롯됐다는 종교적 희생과 반성에서 우러난 것으로, 이해타산과 이기심으로 살아가는 국민과 신자들을 선도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현재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바로 이런 자세가 아닐까. 잘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비난하기 이전에 자신부터 되돌아보려는 마음가짐 말이다.

“너는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는 보면서도 어째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하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넓은 의미의 연대성 원리에서 우리도 그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할 것이다.

한국평협은 취지문에서 “가진 자와 덜 가진 이의 격차와 노사간 지역간의 갈등 또한 불신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갈등과 불신이 신앙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히 번지고 있다는 사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임을 고백하는 하느님 백성들 사이에서도 성체를 모시고 돌아서기가 바쁘게 바오로파니, 아폴로파니, 고향이 어디니 따지면서 반목하는 등 부끄러운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내 탓이오, 신뢰회복, 성찰, 이해와 배려…. 올 한해는 이런 희망적이고 사랑스런 말들이 사회를 훈훈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의 허물보다 자신의 허물을 먼저 살피려는 노력이 확산된다면 그동안 팽배했던 모든 불신과 반목들이 사라질 터. 이것이 하느님 뜻을 받들고 살아가야 하는 모든 신앙인들의 지향점이 아닐까.

마승열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