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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인간적인 사람

입력일 2007-05-06 09:14:00 수정일 2007-05-06 09: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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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건? 씁쓸하긴 하지만 돈, 명예, 권력은 현대인을 지배하는 가장 핵심적인 코드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세 가지는 아마도 현대 사회 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을 압도하는 가장 큰 유혹이자 삶의 목표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세 가지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사는 재미는 실제로는 자잘한 일상의 소소한 기쁨들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서는 동네 한 바퀴 산책길, 근처 야산의 약수터로 물 뜨러가는 소박한 나들이,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 그네 밀어주는 일은 그리 거창한 일은 아니어도 흐뭇한 일이기는 하다.

우리 동네에는 유난히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회사일로 야근이 잦고 휴일이면 온종일 누워 잠만 자는 고달픈 가장들은, 항의하듯 다른 집 남정네를 보라면서 종주먹을 들이대는 아내를 흘겨보며 볼멘 소리로 투덜거린다.

“아 진짜, 이 아파트는 동네 물 흐리는 아저씨가 너무 많아. 피곤해 죽겠구만….”

그래도 일단 나서면 아이들과 공을 차고 자전거를 밀면서 키득거린다. 그렇게 착한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사는 우리 세상은 참 아름답다. 이런 이들은 다른 집 가장들과 어울릴 때도 참 인간적이다. 때로는 마누라 흉도 보고, 직장 상사도 술안주로 삼는다.

어떤 때에는 우리 애가 다른 집 애한테 얻어맞고 들어오면 분을 못 이겨 문을 박차고 나가지만 정작 쫓아가지도 못하고 괜히 맞고 들어온 아이만 더 혼낸다. 그리고 당장 태권도 도장 다니라고 호령이다. 참 ‘인간적’이다.

며칠 전부터 홍콩 느와르 비슷한 사건이 화제이다. 아쉬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재벌집 회장님이 위세 좋게 ‘양아치’들의 버릇을 고쳐놓았다.

그 회사 홍보실에서 배포한 보도자료가 가관이다. ‘OOO 회장의 인간적 면모’가 제목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듣는 ‘인간적’이란 말은 ‘내 자식 건드리면 죽음’이다.

‘인간’이라 함은 ‘동물’과는 달리, 힘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아니라 공동선에 대한 지향을 바탕으로, 삶의 윤리를 지켜나가며 사랑을 나누는 그런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적’이라 함은 내 곁의 힘들고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한 연민의 발로로써 가진 것을 나누려는 태도, 조금 손해 보는 듯해도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마음가짐, 이런 것들을 일컫는다.

내 자식 건드린 ‘양아치’들을 굳이 용서하라고, 그들을 교화시키려고 노력하라고까지 할 일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단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금쪽같은 자식일지라도 다툼이 있었다면 우선은 내 아이의 흠은 없었는지 성찰하는 것이 참된 아버지가 할 일이고, 그래도 부당하게 대우받았다고 생각돼 응징하고 싶다면 ‘인간적’으로 용납되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할 일이다.

금력과 거기에 의지해 확보되는 무력을 동원해 사용하는 힘의 행사는 ‘인간적’이 아니라 ‘동물적’이다. 금력-무력은 모두 ‘힘’에 속하고, 법까지 무시한 무제한적인 ‘힘’의 사용은 동물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약육강식의 원리와 힘의 보복으로 행사되는 자식 사랑을 일러 “이 시대 사라진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화”로 강변하지 말라. 그리고 ‘인간적’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말 것이다. 정말 ‘인간적’인 아버지들이 화낼 일이다.

박영호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