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에는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 주일에는 루가 복음서에 나오는 「발현 이야기」를 듣는다. 두 이야기 사이에 공통점이 많이 있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을 잘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가가시어 그들을 신앙으로 이끌어내신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두 복음서의 이야기가 다같이 예수 부활의 증인들인 제자들도 처음부터 순진하게 무턱대고 다 믿었던 사람들이 결코 아니었으며, 그들도 처음에는 많은 의심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증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 복음말씀은 예수부활의 증인이 되는 길이라는 관점에서 묵상할 수 있다. 오늘 복음의 시작과 끝이 그와 관련되어 있다. 오늘 복음의 시작은 엠마오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고 난 후 예루살렘에 돌아와 그 곳에 있던 제자들의 공동체에 다시 합류하여 그들에게 자신들의 체험을 전해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오늘 복음의 끝은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이런 시작과 끝 사이에 나오는 중간 이야기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그토록 어려웠던 예수의 제자들이 「어떻게 믿게 되었고」, 더 나아가 「어떻게 증인이 되었는지」 그 과정에 관해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예수 부활의 증인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엠마오의 제자 이야기에 이미 나왔던 몇 가지 요소를 생각해 보는 것도 오늘 복음 말씀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엠마오의 두 제자는 십자가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십자가의 충격과 아픔에 그들은 빈무덤의 「표징」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토록 희망을 걸었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되시자, 절망하다시피 되어, 그 동안 자신들이 걸어왔던 「제자의 길」을 다 청산하고, 그들 삶의 옛 터전이었던 엠마오로 힘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조금씩 변화되어 갔다. 그들 자신의 힘으로가 아니라, 그들에게 다가오신 「부활하신 주님」에 의해서. 깊은 슬픔 속에 있던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께서」 몸소 다가가시어 그들과 함께 해 주심으로써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셨다. 이 두 제자는 그분으로부터 성서 전반에 대한 해설을 듣고, 특히 그분과 함께 「빵을 나누면서」 비로소 그분이 부활하신 스승이시라는 것을 알아 뵙고 믿게 되었다.
엠마오의 두 제자 이야기에 나타난 기본 구조는 오늘 주일 복음의 중심 대목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게 나온다. 열 한 제자들을 비롯한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가 어려웠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는데도 『그들은 너무나 놀랍고 무서워서 유령을 보는 줄 알았다』(37절). 그리고 예수님께서 당신 손발을 보여 주시면서 만져보라고 하시는데도 『그들은 기뻐하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아서 어리둥절해 있었다』(41절). 결정적으로 그들을 부활신앙으로 이끈 것은, 예수님을 「만져 본 것」이 아니라, 엠마오의 제자 이야기에서처럼, 예수께서 그들에게 해주신 성서 말씀에 대한 해설이었다.
이렇게 살펴본 엠마오의 두 제자의 이야기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열 한 제자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십자가」 앞에서 흔들리게 될 때, 어떻게 하면 「부활하여 살아계신 주님」을 다시 믿게 될 수 있는지 그 중요한 방법 세 가지를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 첫째 방법은 「성서말씀을」예수님의 정신으로「듣는 것」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과거에 하느님께서 베푸신 사랑을 기억하게 된다. 둘째 방법은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것」이며, 셋째 방법은, 엠마오의 두 제자 이야기의 끝에 잘 나타나 있듯이, 「사도적 신앙고백을 하는 공동체와 일치해 있는 것」이다.
이 세 방법 중에서 「빵을 뗀다」는 말로 표현된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 뵙게 되는 다른 방법들을 종합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신자들은 『「예수님의 정신으로」 성서말씀을 듣게도』 되고, 『사도적 신앙고백을 하는 공동체와 함께 머물게도』 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성체성사는 신자들로 하여금 일상생활에서 「부활하신 그분의 증인」이 되게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한 사람들은 그대로 안주할 수 없게 되고, 결국은 그분의 증언자가 된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말로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사실을 전하는 데 있지 않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회개를 통하여 죄의 용서를 받은」 거룩한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예수님께서 가셨던 「삶의 여정」, 곧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삶을 구체적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부활」의 신빙성은 어떤 「물적 증거」에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당신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던 일부 「사람들」의 예수 부활에 대한 증언과 「예수님을 본받는 삶」이라는 「증거」에서 주어진다. 그러나 그러한 「증거의 삶」은 신자들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안되며 초기 그리스도 공동체가 분명히 증거하듯이 「성령의 힘」을 받아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