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봉두완이 바라본 오늘의 세계] 가시나무에 뿔이 끼지않도록 - 다시 ‘두문동 72인’을 생각하며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입력일 1999-08-01 12:27:00 수정일 1999-08-01 12:27:00 발행일 1999-08-01 제 2162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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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골짜기에 두문동(杜門洞)이 있다. 고려 유신인 신규, 조의생, 임선미, 이경, 맹호성, 고천상, 서중보 등 72인이 끝까지 고려에 충성을 다하고 지조를 지키기 위해 이른바 「부조현」이라는 고개에서 관복을 벗어던지고 이곳에 들어와서 새 왕조의 벼슬자리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조선왕조는 두문동을 포위하고 고려충신 72인을 불살라 죽였다고 한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도 바로 두문동 72인의 얘기에서 나왔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많은 선비들이 어지러운 세상을 버리고 산속에 은거함에 따라 이곳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 또다른 두문동이 생겨났다. 600년이 지난 오늘, 옛 고려 충신 「두문동 72인」의 충절과 지조가 새삼 감동을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

유신시대 등 독재,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 정치에 「사쿠라」라는 말이 회자했다.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이란 말도 생겨났다. 지조를 논하기에 앞서 정치적 소신마저 헌신짝처럼 버리는 정치인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아 오지 않았는가? 아니 지금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나라를 위하여?”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갑자기 소속 정당을 바꿔 새 정권의 이런 저런 자리에 잽싸게 참여한 인사들을 구걸한다는 걸(乞)자를 붙여 「5걸」 시르즈로 비아냥 거리는 말도 있다. 특정고교출신, 특정지역출신, 특정성씨를 따서 여러가지 5걸 시리즈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소속당을 비난하거나 정체성을 부인하면서 「오로지 나라를 위하여」라는 명분으로 변신을 일삼아왔다.

언제까지 우리는 투쟁의 정치, 힘과 세에 기대는 패권정치, 권력의 핵심만을 쫓는 해바라기 정치로 일관할 것인가? 선거때만 되면 고향사람들을 중심으로 호소하는 지역정치에 매달릴 것인가? 구시대, 구정치에 굴절되고 때묻은 골동품같은 보스정치를 앞세워 미래를 열어갈 수는 없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려 방아를 찧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조선조 현종 때의 실학자 반계 유형원은 서울에서 출생했지만, 남다른 큰 뜻을 품고 전라도 부안에 내려가 독서와 저술로 일생을 마쳤다. 조선조 중기의 대학자 남명 조식을 여러차례 나라의 부름을 받았지만 끝내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두류산에 살면서 산천재라는 당호를 짓고 거기서 학문과 사색에 전념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반계와 남명은 살아 생전 벼슬이라고는 통반장 한번도 해본 일이 없는 분들이지만 우리 역사에서 어느 정승이나 판서 못지 않은 존경과 추앙을 받고 있다.

무엇때문일까? 권력이 주는 정승판서의 작위보다 인의를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권력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부나비들에게 의리나 신의라는 것이 과연 있는가? 최근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시도가 주춤하면서 신당창당을 전제로 한 좥플러스 알파좦가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좥젊은 피 수혈좦이 되살아나면서 여러 사람들이 실명으로 거명되고 있다. 왕년의 대통령후보출신에 과거 문민정부 고관출신도 있다. 21세기와 뉴 밀레니엄 시대에 걸맞는 인물들을 영입하겠다고 운운하고 있는데 과연 이들이 21세기 정치를 이끌어 갈 참신한 인물일까?

권력과 의리와 신의

야에서 여로, 다시 여에서 야로 변신하며 오늘날에도 건재한 인물들에게 우리는 또 어떤 이름을 붙여야할까. 두문동 72인처럼 두문불출하며 살 수야 없겠지만, 낙향해서 글이나 읽으며 참회록이라도 쓰며 여생을 보내야하지 않을까.

채근담에 『앞으로 물러섬을 생각하고 있으면 울타리에 뿔이 끼는 재앙을 면한다』고 했다. 물러섬을 모르고 앞으로 나가려만 한다면 가시나무 울타리에 뿔이 끼어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러 설 수도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봉두완(다위·광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대한적십자사 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