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연중 제24주일·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 하느님의 편이 되어 드립시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입력일 2023-09-12 수정일 2023-09-12 발행일 2023-09-17 제 3360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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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지혜 3,1-9 / 제2독서  로마 8,31-39 / 복음  루카 9,23-26
의인의 고난·고통은 ‘십자가의 축복’
세상 구원 위해 살았던 예수님처럼
주님만을 믿고 당당하게 살아가길

아담 엘스하이머 ‘십자가의 영광’(1605년).

어느새 사제 생활이 서른 해를 꼽습니다. 한국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오늘, 해마다 적었던 제 강론들이 누더기 같았습니다. 나름의 최선을 기울이며 때로는 상상하며 이런저런 글들을 적으면서 기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도통 글머리가 열리지를 않았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경솔히 다룬 것만 같고, 숭고한 분들의 삶을 이렇다 저렇다 지껄여댄 허물을 어쩌나 싶었습니다. 이래야 한다고 혹은 저래야 할 것이라 숱하게 주장했지만 기실 제 삶은 모자라기 이를 데 없음에 마음이 내려앉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이 모든 것이 홀로 저지른 것이 아님을 고백하겠습니다. 저는 주님의 것이기에 저의 전부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늘 세상의 온갖 기쁨과 역경에 함께하시니, 그 사랑에 저를 통째로 던지려 합니다. 물론 모든 책임을 그분께 떠넘겨드릴 수는 없기에 오늘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이해와 양해를 청하겠습니다. 이 글은 다만 하느님께로 함께 나아가는 믿음의 길을 걷는 인간의 소회일 뿐임을 밝힙니다.

오늘 강론을 준비하면서 마음이 꺾였던 가장 큰 이유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과 너무나 동떨어진 제 삶을 기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편 이 거룩한 주일에 선포되는 말씀을 들으며 의인의 고난과 고통을 ‘피해야 할 십자가’가 아닌 ‘십자가의 축복’이라고 믿는 분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을지 의문이 들고, 얼마 계실 것 같지 않아 속상했던 것입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기는커녕 전혀 소용이 되지도 못할 글을 ‘머리 싸매며’ 적어야 하는 게 슬펐던 것입니다.

사실 성경을 가장 확실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모자란 인간에게 당신의 말씀을 설명할 권한을 주셨습니다. 또한 세상의 어느 누구든지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도록 도우시며,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살아내기를 참으로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십자가’임을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수도 없이, 세상의 갖은 어려움과 고통과 역경과 박해를 견뎌내고 이겨낼 힘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늘 함께하시며 ‘우리 편’이 되어 주실 것을 다짐해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확실하고 질기고 탄탄해서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으며 그 어떤 것으로도 지울 수 없다는 진리를 거듭 선포해주셨습니다. 진정 주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믿음을 생활화하시는지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오직 하느님 사랑에 의한 것입니다. 이 작은 가슴에 그분을 담아서 사랑을 고백하는 것 또한 하느님 은혜의 결과입니다. 무엇보다 지난 삶을 돌아보며 당신을 온전히 따르지 못한 것에 너무너무 죄송해하는 마음까지도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내 믿음보다 크신 그분의 사랑에 힘입어 희망과 기쁨으로 평화를 누리며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네 삶은 너무도 보잘것없습니다. 이런 우리 모습 탓에 세상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힘을 잃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이 쓰러져 짓밟히는 것은 모두 우리 잘못입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교회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순교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의 대축일을 기념하며 미사를 봉헌합니다. 목자도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며 죽기까지 주님께 충성을 바쳤던 한국교회의 성인들께 칭송을 바치며 그 삶을 본받기를 청합니다.

그런데 그분을 따르려고 세상 것들을 포기하는 경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위해서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만 같습니다. 이런 우리 모습에 주님은 얼마나 답답하실까요? 이 좋고 복된 날에도, 켜켜이 쌓인 세상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 순간, 십자가를 지고 고통을 당하는 당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하느님의 심정은 또 어떠실까요? 세상의 모든 운명에 함께 하시는 주님이시니, 깊이깊이 마음을 앓으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더욱 당신을 향한 믿음인을 애타게 찾을 것입니다. 오직 순명하기 위해서 세상사에 초연한 그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세상이 하느님의 벌을 받는 것으로 오해할 만큼, 역경과 박해와 헐벗음을 당하면서도 당신을 기억하는 믿음인을 찾으실 것입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하느님을 사랑해드리기 위해서 파멸도 고난도 개의치 않는 담대한 믿음인이 몹시도 그리울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살았던 예수님의 방법이었고 주님의 편으로 살았던 순교자 모든 분들의 삶이었기에 진정 그렇습니다.

이 복된 주일, 주님을 향한 길은 십자가의 길 외에 다른 통로가 없다는 진리를 깊이 새깁시다. 모든 시련까지도 그분께서 허락하신 믿음의 훈련임을 기억합시다. 무엇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어떤 상황도 방관하지 않으신다는 것,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분이시라는 진리를 품어, 당당하게 복음을 살아갑시다.

참 단단한 믿음 생활로 주님께 기쁨을 드렸던 우리나라의 모든 순교자께 무릎 꿇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전구를 청합니다. “한국교회를 위해서 빌어주소서!”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