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가르침에 포함된 도덕의식 지키는 사회 돼야
“나는 자유주의의 역사에서 간과되곤 하지만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고자 했다.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이 도덕적인 지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헬레나 로젠블랫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
■ 신앙의 실종 성경에는 난해한 말씀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마르 4,10) 가르침과 비유의 목적은 알아듣고 이해하게 하려는 것인데 오히려 더 모르게 하고 용서조차 안 된다니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풀이는 이렇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서를 인용했는데(6,9-10) 이사야 예언자가 활동했던 시기부터 예수님 시대를 배경으로 삼습니다. 이사야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고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강대국의 침략이라는 외적 요인도 있었으나 이사야는 신앙의 불충함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백성이라며 그들의 거짓 경신례와 예루살렘의 죄상을 고발합니다.(이사 1장) 이른바 정치적 혼란, 위정자들의 실정, 백성의 신앙적 타락인데 이는 예수님 시대에도 동일했습니다. ■ 신앙없는 사회의 무서움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멸망을 슬퍼하시듯(루카 19,41) 이 성경 구절은 도무지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인간의 완고한 처지와 그런 완고함이 불러오는 파국적 결과를 빗대는 것으로 풀이되곤 합니다. 그런데 신앙에 충실하지 못하면 그런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가 묻게 됩니다. 신앙의 가르침에는 하느님 계시를 수용하고 실천하라는 뜻과 인간과 사회가 반드시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습니다. 하느님 계시는 사회의 윤리와 도덕의 뿌리이며, 도덕의식이 상실될 때 사회와 공동체가 온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의 본질은 정신적인 가치에 있고 그 가치란 도덕과 선함이며 여기에 의무와 나눔을 더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가꾸어 가는 방법입니다.(성 요한 23세 교황 회칙 「지상의 평화」 36항 참조) 반대로 도덕과 윤리가 실종된 사회는 돈과 욕심을 위해 속이고 빼앗고, 이웃을 불행하게 하고 심지어 불의한 만행에 눈을 감습니다. 하느님 말씀과 도덕을 경시한 결과는 이처럼 참담합니다. ■ 신앙의 소중함 참으로 안타깝습니다만 얼마 전부터 ‘도덕 불감증’, ‘내로 남불’, ‘니탓 남탓’, 심지어 “정치에 도덕이 필요한가”라는 괴상한 말들을 자주 접합니다. 대개 내 삶을 성찰하지 못하고 남의 탓만 일삼는 것도 모자라 권력과 이익 때문에 가장 소중한 것을 외면하는, 일부 몰지각하고 양심을 잃어버린 어른들의 처사입니다. 그런 모습을 우리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봐 걱정입니다. 하지만 이는 정직과 성실, 신뢰가 약해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자 “내 탓이오” 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진정으로 사회와 미래를 위해, 또한 우리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모두가 하느님 말씀을 진심으로 지키며 사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교회는 인류에게 신앙의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될 권리가 있다. 교회는 교의 진리뿐만 아니라 인간성 자체와 복음에 근원을 둔 도덕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이다. 실제로, 신자들은 복음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이를 준수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70항)이주형 요한 세례자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