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단속을 무릅쓴 절박함 / 박주헌 기자

박주헌 비오 기자
입력일 2023-05-16 수정일 2023-05-16 발행일 2023-05-21 제 3344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이주민지원센터 김포이웃살이로부터 취재 요청을 받았다. 센터에 이주민을 위한 무료 이동 클리닉을 마련했으니 보도를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무료 진료소 관련 보도들을 찾아봤지만, 대부분 시행 기관의 정책적 성과나 의료혜택을 늘어놓는 기사들이었다. 무엇이 특별해서 취재를 요청했을까.

센터에 도착해 의료담당 오현철(프란치스코) 신부와 얘기를 나누며 알게 됐다. 이날 무료 이동 클리닉은 우리 사회의 약자 이주민 중에서도 특별히 더 약자인 미등록 이주민에게 의료 지원을 제공하는 활동이었다.

최근 미등록 이주민 단속이 심해지고 집중단속 기간도 자주 발령돼 미등록 이주민들은 전보다 더욱 숨어 지내야 한다. 그 결과 의료기관에 가는 당연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해 치료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고, 상당수 질환을 찾아내고 악화를 막는 기초 검진도 받을 수 없다.

이 악물고 병원에 가도 미등록 신분이기에 보험 적용도 안 돼 거액의 치료비와 검사비에 가로막힌다. 운 좋게 돈이 모여 검사와 치료를 진행한다고 해도 단속에 걸리면 일자리를 잃고 쫓겨난다.

아파도 마음 놓고 아파할 수 없는 미등록 이주민들. 그런 그들이 단속 위험을 무릅쓰고 센터에 모였다는 건 그만큼 도움이 절박하다는 뜻이다. 대부분 기피업종에 종사하는 미등록 이주민들은 우리 사회에서 작지 않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우리는 법적 옳음과 그름을 따지기보다 먼저 인권 차원에서 그들 입장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아기 예수도 이집트 이주민이었듯, 주님께서는 우리가 미등록 이주민들을 배제하지 않고 의료 등 최소한 인권만큼은 보호해주길 바랄 것이다.

박주헌 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