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사라진 꿀벌이 보내는 경고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3-05-01 수정일 2023-05-01 발행일 2023-05-07 제 3342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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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이 빚어낸 자연질서 파괴… 결국 피해는 되돌아올 것
유력한 이유는 지구 온난화 
꿀벌 없으면 꿀 얻지 못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 삶 파괴

인천 강화군에서 20년 넘게 양봉업을 하고 있는 김인식(프란치스코)씨는 지난 겨울 월동하고 있는 꿀벌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려고 벌통을 열었다가 망연자실했다. 250개가 넘는 벌통의 꿀벌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벌통 하나에 사는 꿀벌들은 2~4만 마리가량. 몇 달 새에 1000여만 마리 꿀벌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꿀벌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인천 강화군 강화읍에서 양봉업을 하고 있는 김인식씨가 빈 벌통을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꿀벌은 왜 사라졌을까?

한국양봉협회의 월동 봉군 소멸 피해 현황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1만2795개 양봉 농가 중 82%인 1만546개 농가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벌통 수로 보면 전체 153만9522봉군 중 57.1%인 87만9722봉군이 피해를 입었다. 벌통 1개에 꿀벌 2만 마리가 있다고 본다면 약 176억 마리가 소멸된 것이다.

이처럼 꿀벌들이 겨울철에 사라지는 주요 원인은 2년 연속 지속됐던 벌꿀 흉작으로 인한 꿀벌 면역력 저하, 11~12월 고온 현상으로 인해 이른 꿀채집에 나선 벌들이 일교차로 인해 동사했다는 추론이 유력하다. 또한 드론으로 살충제를 배포하는 농가가 많아지면서 꿀벌들이 살충제에 쉽게 노출된 결과 죽거나 방향 감각을 상실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군집 붕괴 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은 꿀을 구하러 간 꿀벌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해 여왕벌과 새끼 벌까지 집단으로 죽는 등, 벌통 안에 일정하게 유지돼야 할 꿀벌 개체 수가 부족해 군집이 무너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2006년 미국에서 이 같은 현상이 발견된 이후 세계 각국에서 꿀벌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지만 지구 온난화가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꿀벌의 집단 폐사는 단순히 꿀을 채집할 수 없다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식물의 수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꿀벌이 사라졌다는 것은 작물이 수정되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하고 결국 인류의 식량 수급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꿀벌은 벌꿀 1g을 만들기 위해 약 8000송이에 달하는 꽃을 오가며 꿀을 모은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보고서를 통해 세계 100대 작물 중 71%가 꿀벌을 매개로 수분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양파·당근·사과 등에서는 꿀벌의 기여도가 90%를 넘는다.

사무엘 마이어(Samuel S Myers) 하버드 공중보건대 교수팀은 2015년 학술지 「란셋」(The Lancet)을 통해 “꿀벌과 같은 화분(꽃가루) 매개 곤충들이 100% 사라지게 되면, 전 세계적으로 과일 생산량의 22.9%가 감소하고 채소는 16.3%가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견과류의 생산도 22.9% 감소할 것”이라며 “이로 인한 사망자 수는 142만 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꿀벌이 사라지면서 국내에서는 화분 매개에 꿀벌 의존도가 높은 참외와 딸기, 사과 등의 작물 생산에 비상이 걸렸다. 참외는 화분 매개에 쓰이는 꿀벌 사용률이 93.1%로 한해 6만4000여 봉군이 참외를 생산하는 데 사용된다. 딸기는 수분 시 100% 화분 매개 곤충에 의존한다. 인공 수정도 가능하지만 화분 매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생산 물량뿐 아니라 작물의 품질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꿀벌이 사라져 쌓아둔 빈 벌통들. 김인식씨가 소유한 250개 벌통이 모두 비었다.

■ 사라진 꿀벌의 메시지

벌통에 여왕벌을 데려다 놓으면 집을 지키고 청소하고 일을 하며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꿀벌. 20년 넘게 양봉업을 하고 있는 김인식씨는 “꿀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사람보다 낫다 싶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겨울이 되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여왕벌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뭉치는 꿀벌들은 바깥의 벌들이 안으로, 안쪽 벌들이 바깥으로 이동하며 공생한다. 부지런하고 똑똑한 꿀벌들이 지난해 겨울에는 집을 나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100개가 넘는 벌통이 텅 빈 것은 20여 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겨울에는 온도 유지를 위해 벌통에 이불을 덮어두지만, 활동을 안 하면 죽기 때문에 안팎을 오갈 수 있는 작은 구멍을 남겨 놓아요. 벌통 밖이 안보다 따뜻해지면 꿀벌들이 봄이 왔다고 생각해 밖에 나가서 활동하는 것이지요. 올해 1~2월에는 겨울 같지 않은 따뜻한 날이 많았다 보니 밖으로 나온 꿀벌들이 일교차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꿀벌의 군세가 약해지면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꿀벌들은 꿀을 채집하면서 프로폴리스를 가져와 벌통 틈새에 발라 바이러스 침투를 막는다. 그런데 군세가 약해진 꿀벌들이 프로폴리스를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꿀벌의 면역력이 약화되는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진드기 등으로 인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꿀벌들은 비행능력이 감소하고 수명이 단축돼 군집 붕괴를 가속화시킨다.

편리하고 손쉽게 농사를 짓기 위해 개발된 기술들도 자연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쳤다. 김씨는 “최근에는 드론으로 하늘에서 농약을 분사하면서 이에 노출된 벌들이 죽는 경우도 많다”며 “꿀벌들이 꿀을 채집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식물이 수정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다른 농업을 하는 농민들도 꿀벌이 사라지는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매년 봄이면 남부에서 중부지방을 거쳐 인천까지, 매년 꿀벌들과 함께 세 차례에 걸쳐 꿀을 채집했던 김씨는 올해는 남부지방으로 내려갈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가 20년 넘게 지켜온 양봉방식을 바꾼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때 되면 어김없이 꽃이 피고, 꽃피는 곳으로 내려가 순차적으로 올라오면서 꿀을 채집하면 됐었죠. 그런데 이젠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에서 동시에 꽃이 피고 있어요. 3번 딸 수 있던 것이 2번으로 줄었어요. 날씨가 변한 것이죠. 도시 사람들은 모를 테지만 자연을 통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지구의 변화가 무섭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꿀벌이 사라진 것은 단순히 꿀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넘어 우리가 즐겨먹는 과일이 줄어들고, 가격이 오르고, 결국엔 먹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변화는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꿀벌들이 사라진 빈 벌통이 쌓여있는 김씨의 양봉농가. 지자체 지원으로 올해는 40여 개의 벌통을 구해서 그나마 꿀을 채집할 수 있게 됐지만, 양봉업의 미래는 안갯속이다.

“꿀벌을 살리는 일이요? 저는 농약 안 뿌린 못생긴 과일만 먹어요. 소비자들이 먼저 자연을 위한 합리적인 소비를 해야 농업 환경이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꿀벌들은 아무 잘못이 없어요. 기후변화를 야기해 꿀벌을 죽게 한 것은 인간이니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