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기도-다시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 / 이용수 십자가의 요한 신부

이용수 십자가의 요한 신부 ,병원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입력일 2023-05-01 수정일 2023-05-01 발행일 2023-05-07 제 3342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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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시절, 레지오 회합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형제님들이 여섯 분 정도 계셨고 나는 훈화를 했다. 그러고 나서 형제님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나는 한 형제님께 “기도를 얼마나 하세요?”라고 여쭤보았다. 그러자 옆에 계신 다른 형제님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형제는 묵주기도만 일주일에 1000단을 바칩니다.”

순간 내가 놀라자, 그 형제님은 자신이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어떻게 기도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부제님, 하느님께서는 단 한 번도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 적이 없어요.”

레지오 회합이 끝나고 그 형제님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형제님께 “매일 그렇게 많은 기도는 왜 하시는 거예요?”하고 여쭤보았더니 “그분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아니까요”라고 대답하셨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처럼 하느님 사랑이 우선순위가 되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다. 기도는 의지의 문제이기 전에 사랑의 문제라는 말씀이셨다.

나는 병원사목을 하면서, 절박한 상황에 놓인 환자나 보호자들을 만날 때가 있다. 한 번은 신앙을 가졌지만, 하느님 없이 살아온 분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분은 자신의 지난 삶의 여정을 말씀해 주셨다. 그분 말씀을 요약하면, 지금까지 자신이 믿어온 하느님은 죽어 계신 분이라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자녀가 아프고 보니까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때 기도가 나왔다고 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을 때는 말씀을 들어도 들어오지 않았고, 기도해도 공허하게 느껴지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는 자기 딸의 질병을 통해 당신을 부르신다는 것을 이제는 느끼신다고 하셨다.

신자들, 그리고 병원에서 환자들과 만나며 느낀 것은 우리 대부분이 자신의 좋은 모습을 하느님께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타인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하느님께도 우리의 좋은 것만 보여드리려고 할 때가 있다.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가서 의사에게 제일 건강한 부분만 보여주려고 한다면, 어리석다고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마태 9,13) 오셨다. 기도의 시작점은 그분의 사랑이고,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예전에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다. 기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삶에 하느님이 살아계셔야 기도하게 된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도다운 기도를 하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는 기도의 상황을 마련하셔서 기도의 자리로 이끄신다.

내가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수록 더 기도하게 하신다. 기도는 내 시선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꾸는 시간이다.

이용수 십자가의 요한 신부 ,병원사목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