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제26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 수상자 이해인 수녀

방준식 기자
입력일 2023-04-04 수정일 2023-04-04 발행일 2023-04-09 제 3338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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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현대인에게 전하는 소박한 사랑 담긴 위로 편지”
수도생활 59년·등단 47년째
시·글 70여 편과 메모 등 엮어
이 수녀만의 감성·지혜 전해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와 진리, 가톨릭 정신을 문학으로 승화한 작품과 작가를 발굴해 격려하는 ‘한국가톨릭문학상’이 제26회를 맞았다. 올해 본상 수상작으로는 이해인(클라우디아·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의 「꽃잎 한 장처럼」(2022, 샘터), 신인상 수상작으로는 이주란 작가의 「수면 아래」(2022, 문학동네)가 선정됐다. 본상 수상자 이해인 수녀와 신인상 수상자 이주란 작가를 만나 작품 소개와 수상 소감을 들어봤다.

“저는 제가 선택한 수도 여정의 행복한 순례자입니다. 때론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았지만 이제는 ‘부산 광안리 어디선가 민들레와 흰 구름, 흰 나비, 바다를 좋아했던 한 수녀가 세상과 우정을 나누며 사랑을 받았었지’ 정도로 저를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부산 수영구 광안동에 있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부산본원 한켠에 소박하게 마련된 ‘해인글방’. 저 멀리 보이는 광안리 푸른 바다, 반짝거리는 봄빛 햇살, 흐드러지게 피어난 민들레꽃과 벚꽃과 동백꽃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이다. 해인글방에서 만난 이해인 수녀는 수상 소감을 묻는 첫 질문에 수줍은 ‘문학소녀’처럼 미소를 머금었다.

“상이란 영광스럽고 좋은 것이긴 하지만 왠지 수도자의 삶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기쁨 못지않은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나 제 수도생활 59년, 등단 47년을 맞이한 해에 받는 상이고 보니 저 개인뿐만 아니라 제가 몸 담은 수도공동체 가족, 애독자들과 같이 받는 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 수녀의 산문시집 「꽃잎 한 장처럼」은 신앙인뿐만 아니라 삶에 지친 현대인 모두에게 건네는 축복과 사랑의 메시지다. 이 수녀는 “이번 책은 소박한 사랑이 담긴 위로편지”라며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는 일상의 영성을 살아야 하며,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꽃잎 한 장처럼」은 만 78세, 오랜 암 투병 생활을 정신력으로 이겨내며 수많은 작품 활동을 이어온 이 수녀 자신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에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 마치 지상의 여정을 마무리하기 전에 건네고 싶은 하나의 유언장 같기도 하고, 일상의 삶에서 행복과 기쁨을 발견하고 살아가는 한 수도자의 내밀한 고백서 같네요.”

산문시집 「꽃잎 한 장처럼」 1부에 실린 30편의 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이 수녀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 소식을 접하며 느낀 삶의 유한성, 남은 시간들의 소중함, 당연히 여기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놀라움과 감사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늦은 봄날 무심히 지는/꽃잎 한 장의 무게로/꽃잎 한 장의 기도로/나를 잠 못 들게 하는/사랑하는 사람들//오랫동안 알고 지내/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그들의 이름을/꽃잎으로 포개어/나는 들고 가리라/천국에까지”(수록 시 ‘꽃잎 한 장처럼’ 중에서)

2부와 3부에 실린 글들은 삶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이 수녀의 기도와 진심을 담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도 같은 사회적으로 크게 슬픈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수녀는 직접 현장을 가보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위로를 간접적으로나마 표현하려 애썼다.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이 우리 수녀원에 와서 글과 고운 화분을 해인글방에 남겨두고 가기도 했었죠. 슬픈 사람들에게는 너무 큰 소리로 말하지 말고, 마음의 말을 은은한 빛깔로 만들어 눈으로 전하고 가끔은 손잡아주라고 제 시에도 썼듯이, 위로에도 조용한 겸손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늘 새롭게 배워가는 중입니다.”

지난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펴내며 일약 ‘스타 작가’의 삶을 살게 된 이해인 수녀는 아직도 자신의 유명세가 ‘과분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수녀는 자신의 일생은 ‘항상 성실하게 과제물을 준비하고 일기를 쓰는 어린이’와도 같았다며 항상 감사하고 겸손해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예비 수녀 시절, 그녀는 어느 봄날 점심 식사 전 낮 기도를 마친 뒤 체조를 하다 수녀원의 아주 좁은 돌 틈에서 얼굴을 내민 민들레꽃 한 송이를 보고 이런 결심을 했다. “그래, 알았어. 나도 너처럼 인내와 기다림의 삶을 살아볼게. 앉아서도 멀리 가는 기다림의 삶을 살아볼게. 푸른 하늘 향해 기도의 피리를 부는 수도자가 될게.”

사랑과 기도를 바탕으로 한 일상의 영성, 자연과 사물에 대한 애정, 인간에 대한 그리움과 이별을 솔직담백하게 담아낸 이 수녀의 시와 글은 세상을 향해 사랑의 메시지를 진하게 띄우고 있다.

“꽃잎 한 장의 무게, 꽃잎 한 장의 기도로 이 지상의 순례 여정을 마치는 날까지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임종의 순간에도 가능하면 시 한 송이 가슴에 품고 가고 싶어요. 일일이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더라도, 저와 인연을 맺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언으로라도 꼭 고백하고 싶어요. 그들을 한 송이 꽃으로 기억하겠다고, 참 고마웠다고. 그리고 사랑했노라고!”

■ 이해인 수녀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소속으로 1968년 첫 서원을 하고 1976년 종신서원을 했다.

1970년 「소년」지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펴낸 이래 다수의 시집과 산문시집, 수필그림책, 선집, 번역서, 자작시 낭송음반, 논문집 등 많은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이 수녀의 책은 스테디셀러로 종교를 초월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초·중·고 교과서에도 여러 시들이 수록됐다. 제9회 새싹문학상, 제2회 여성동아대상, 제6회 부산여성문학상, 제5회 천상병 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수상작 「꽃잎 한 장처럼」

수도 자로서, 또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이해인 수녀는 신앙과 사색, 기도와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왔다. 불안과 우울의 시대, 진실한 위로와 축복이 필요한 우리에게 이 수녀는 ‘꽃잎 한 장처럼’ 작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다. 「꽃잎 한 장처럼」은 얼어붙고 혹독한 계절을 지나 마침내 봄을 알리는 꽃과 같은 책이다.

이 산문시집에는 시와 글 70여 편을 비롯해 일상을 담은 작은 메모 100여 편이 수록됐다. 주로 지난 2019년 11월부터 작성된 것들로,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급변한 우리 삶의 모습과 그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냈다. 총 4부로 구성돼 1부에는 최근에 지은 시, 2부에는 2년 여간 일간지에 연재했던 시와 글, 3부에는 다양한 기념 시와 글, 마지막 4부에는 이 수녀의 일상을 메모해 둔 노트 일부분을 실었다.

「꽃잎 한 장처럼」은 수십 년간 변함없이 가톨릭 정신을 문학에 담아 대중에게 친숙하게 알려온 이 수녀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얻은 소중한 감성과 지혜를 쉬운 언어로 알기 쉽게 전달해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이 수녀 특유의 화법을 완벽하고도 고스란히 담아낸 수작이다.

방준식 기자 bj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