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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열심한 신앙인’일까? ‘필요한 신앙인’일까? / 김민수 신부

김민수 이냐시오 신부,서울 상봉동본당 주임
입력일 2023-04-04 수정일 2023-04-04 발행일 2023-04-09 제 3338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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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닌데, 인기리에 방영되면서도 사회적인 반향을 주는 드라마는 간혹 보는 편이다. 그중의 하나가 이제 곧 시즌3이 시작되는 ‘낭만닥터 김사부’이다. 높은 시청률에 힘입어 스토리를 이어 가는 이 드라마에는 여러 부류의 의사들이 등장한다. 모두가 자기 직업에 충실하고 능력 있는 의사들이지만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두운 단면도 보인다.

이러한 세계 속에 단연코 돋보이는 존재는 의사 김사부이다. 후배 의사가 질문한다. “어느 쪽입니까? 선생님은 좋은 의사입니까? 최고의 의사입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 여기 누워 있는 환자에게 물어보면 어떤 의사를 원한다고 할 것 같나? 최고의 의사? 아니, ‘필요한 의사’이다. 그래서 나는 이 환자에게 필요한 의사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그는 자신을 환자에게 필요한 의사로서 정체성을 표명한다. 바로 이런 면에서 그는 다른 의사들과 구별된다. 다시 말해서, 천재 의사로 불리던 김사부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최고의 의사나 훌륭한 의사로 존경받으려는 생각은 아예 없다. 오히려 환자에게 필요한 의사로서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치료해 주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는 ‘소명 의식’을 가지고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켜 나간다.

너무 비약적일지 모르지만 주인공 닥터 김사부를 보면서 루카복음 말씀이 떠오른다.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 의사로서 자신이 주체가 되지 않고 환자를 주체로 환대하는 모습에서 그의 소명 의식을 엿보게 되고, 그것이 바로 다른 의사들과 차이를 만드는 근본이 된다. 환자에게 필요한 의사라는 소명 의식이 이렇게 겸손한 종의 태도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신앙인들도 소명 의식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진정한 신앙인인지 아닌지가 식별된다.

「가문비나무의 노래」의 저자는 신앙인 중에는 재능의 노예가 된 사람과 참된 봉사자가 있음을 지적한다. 재능의 노예가 된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고 인정받아 성공과 갈채를 받기 좋아한다. 이런 사람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보다는 자신이 영광받는 주체가 되기를 원한다. 반면에 진정한 봉사자는 하느님께 재능을 받았다는 소명 의식으로 자신이 받은 사랑에 사명의 실천으로 응답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목자로서 나 자신은 재능의 노예가 되어 있지는 않은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본당사목을 하다 보면 사목자가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을 계획하여 결정을 내리게 되고, 어느 때는 자신의 능력으로 본당의 모든 사목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착각을 할 때도 있다.

더 나아간다면 이 정도 신자들을 위해 사목을 하니까 신자들에게 칭찬받고 감사하다는 말도 당연히 들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잠시 마귀의 유혹에 빠져 교만한 마음이 들지 않았나 자성해본다. 성직자든 평신도든 그저 열심히 하기만 하면 훌륭한 신부, 훌륭한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필요한 신부, 이웃에 필요한 신자가 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일 것이다.

이웃에게 필요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존경받아 첫째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 예수님은 첫째가 되기보다는 꼴찌가 되라고 하신다.(마르9,35 참조) 얼마 전에 시성된 사막의 은수자 샤를 드 푸코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이 가운데 꼴찌가 되어라”라고 권고한다. 꼴찌가 됨으로써 첫째가 되는 ‘신앙의 신비’를 체험할 때 비로소 남에게 필요한 신앙인으로 살게 될 것이다. 어느 신자 의사가 자신에게 손수건을 선물로 건네준 스승에게 들은 말을 평생 잊지 않고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을 실천하고 있다. “환자들의 눈물과 땀을 닦아 주는 의사가 되라.”

김민수 이냐시오 신부,서울 상봉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