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할머니의 빵 / 안장혁

안장혁 필로메노,제2대리구 서판교본당
입력일 2023-03-07 수정일 2023-03-07 발행일 2023-03-12 제 333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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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면서 나와 동생은 외할머니가 돌봐주셨다. 외할머니는 성당을 열심히 나가시는 분이셨는데, 항상 기도와 미사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그때 이모네 가족도 함께 지냈었는데, 사촌 동생들도 할머니가 돌봐주셨다. 혼자서 아이들 4명을 돌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할머니는 항상 인자한 얼굴로 우리를 대해주셨다. 낮에는 항상 손수 만드신 빵을 간식으로 주셨다. 찐빵같은 할머니 빵이 나오면 우리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지금도 그때 먹었던 빵의 묘한 냄새와 맛이 기억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라 많은 것이 기억나진 않지만, 할머니와 나눴던 정서적 교감은 깊게 남아있다. 언젠가 손가락에 사마귀가 생겼었다. 방과 후 집에 와서 점심을 먹는데 내가 사마귀를 신경 쓰자, 할머니가 “거짓말하면 사마귀 생기는 거야”라고 하셨다. 그때 ‘거짓말을 안 하겠다’ 다짐했고, 신기하게도 사마귀가 사라졌다.

이사를 하면서 할머니와 떨어져 지내게 됐고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만 뵙게 됐다. 군 제대 할 무렵 할머니 옛집은 헐리고 새 건물을 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이모네랑 한 건물에서 함께 살게 됐다. 돌아가시기 전 외할머니는 치매를 앓으셨는데, 지켜보는 가족들 모두 안타깝고 힘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점점 다리를 펴지 못하게 되셔서 앉을 때는 쭈그리셔야 했고, 주무실 때도 다리를 펴지 못하셨다. 어릴 적 나를 예뻐해 주시던 할머니가 나를 보고 “너는 누구니?” 하실 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몸이 많이 쇠약해지셨고, 환자용 침대에 항상 누워 계셨다. 등에는 욕창이 생기고 몸은 더 말라갔다.

어느 날 아침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숨을 안 쉬신다고 하셔서 서둘러 할머니 집으로 내려갔다. 나는 표정이 없고, 온몸이 차가운 할머니를 보았다.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할머니 옆에서 묵주기도 해 드려”라고 하셔서 할머니 손을 잡고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가족들 모두 할머니에게 “고생하셨다”고, “이제 주님 품에서 편안히 지내시라”고 말씀드렸다.

평소에도 할머니는 성모 신심이 깊은 분이셨다. 그래서 분명 성모님이 고통을 잊게 하고, 행복한 곳에서 지내게 해주시려고 때마침 성모 성월에 데리고 가신 거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젊으셨을 때부터 자기 자신을 희생하며 가족을 위해 고생하셨다고 들었다. 6·25전쟁 때 북에서 내려오셔서 6남매를 키우시느라 고생하셨을 할머니는 오직 주님 사랑만을 실천하며 사셨다고 했다. 이제 할머니 음성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할머니가 나와 가족들에게 보여주신 사랑만큼은 기억난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미사만큼은 절대로 빠지면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어머니도 할머니에게 그렇게 배우셨다고 했다. 아마도 내 신앙의 뿌리는 어머니를 거쳐 할머니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손수 만들어주신 사랑의 빵이 생각난다. 이제 만날 수도, 빵도 맛볼 수 없지만 가끔은 할머니의 빵이 그립다.

안장혁 필로메노,제2대리구 서판교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