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명예기자 단상] 귀신 쫓는 회장 할아버지 / 배정수

배정수 베드로 명예기자
입력일 2023-02-21 수정일 2023-02-21 발행일 2023-02-26 제 3332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대전교구 조치원본당 노송공소 제2대 회장 김덕환 프란치스코는 1901년 충남 공주 정안면 지률공소까지 가서 세례를 받고 공주성당에서 외국 신부님을 도와 복사를 한 김동면 레오의 외아들이다. 김동면은 함께 세례를 받고 노송공소 초대 회장을 역임한 배영호 안토니오와 같이 노송에 천주교를 전파하신 분들이다. 그리고 두 분의 후손이 주축이 되어 현재 노송공소가 13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필자의 기억 속 제2대 회장 김덕환 프란치스코는 ‘귀신 쫓는 회장 할아버지’다. 그 댁은 우리 마을 한가운데 있는 큰 기와집이었는데, 1963년 강당을 세울 때까지 ‘공소집’ 역할을 하였다.

필자가 어렸을 적 우리 마을에는 ‘경 읽는 소리(굿)’가 그치지 않았다. 특히 이웃집은 한 달이 멀다 하고 경을 읽고, ‘비는 할머니’가 와서 빌고, 바가지에 된장국에다 밥을 말아서 버리고는 하였다. 덕분에 필자는 고사떡을 자주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 이웃집에는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이를 보다 못한 회장 할아버지가 설득에 나섰다. “당신들이 조상 대대로 믿고 재앙을 무서워하는 왕신단지를 내가 부수어드리겠소. 그로 인한 재앙은 내가 받을 테니 염려 말고 나에게 맡겨주시오. 대신 그 속에 있는 곡식은 내가 먹고, 옷감은 우리 아들 손자들 옷을 만들어 입히겠소.”

당시만 해도 구들장을 건드리면 ‘돌의 지신’이 성을 내어 집안에 재앙이 생기고, 큰 나무를 베면 ‘목신’이 노하여 동토 나고,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왕신단지’를 잘못 위하면 왕신이 노하여 집안에 재앙이 생긴다는 무당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 회장 할아버지가 신주단지를 없애자고 하신 것이다.

노송공소 제2대 회장 김덕환 프란치스코.

아무리 경을 읽고 굿을 해도 우환이 끊이지 않던 이웃집은 결국 회장 할아버지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신주단지를 없애기로 한 날, 필자를 포함하여 온 마을 사람들이 구경을 왔다.

할아버지는 집안 여기저기 성수를 뿌리면서 기도를 하시고는 신주단지를 마당으로 들고 나오셨다. 그러더니 곡식은 쏟아놓고 단지를 울타리 밖 도랑에다 냅다 던지시는 게 아닌가. 그런데 신주단지가 박살나는 소리에 주인 아주머니가 그대로 마당에 까무러쳤다. 온몸을 떨며 경련을 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필자는 어린 마음에 아주머니가 죽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도 회장 할아버지는 눈도 깜짝 않으셨다. 아주머니에게 성수를 뿌리며 기도를 하시고는 물을 조금 먹이라고 하실 뿐이었다. 놀랍게도 물 한 모금을 드신 아주머니가 푸시시 일어나셨다. 그때 어찌나 놀랐는지 8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날 이후로 노송리 마을에는 경 읽는 소리가 사라졌다. 단지 속에 들어 있는 곡식이며 옷감을 자손들에게 먹이고 해 입혀도 탈이 없는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왕신단지를 없애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귀신을 쫓은’ 회장 할아버지는 또한 마을 노인 분들을 찾아가 죽음의 준비로 하느님을 믿고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권면하여 많은 어른들이 대세를 받고 임종을 하셨다. 그 후로 자손들이 천주교로 많이 입교를 해서 노송리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여담으로, 회장 할아버지가 귀신을 쫓는 바람에 필자는 이웃에서 자주 얻어먹던 떡도 못 얻어먹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의 믿음도 점점 더 성장했고, 회장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현재 노송공소 9대 회장을 하고 있다.

배정수 베드로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