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나이드는 두려움에서의 해방(2) / 장명숙

장명숙 안젤라 메리치(유튜브 크리에이터 ‘밀라논나’),
입력일 2023-01-31 수정일 2023-01-31 발행일 2023-02-05 제 332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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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댓글 숫자와 내용을 보는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오며 젊은 독자들에게 깊은 고마움과 애정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 영상을 보고 댓글을 올리는 젊은이들을 위해 이 늙은이가 제공해 줄 수 있는 게 뭘까?’ 정성을 더 기울이고 고민했습니다.

‘아침 일상 영상의 반응이 좋았으니, 저녁 일상을 찍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작진이 제안했습니다. 저녁 일상! 간단히 저녁 먹고 스트레칭하고 씻고 책보다 십자고상 앞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잠자리에 드는 단순하디 단순한 일상을 뭘 찍어서 영상으로 올리자는 것인지 진심 이해가 안 됐지만, 어차피 처음부터 수동적 유튜버였으니 가감 없이 편안하게 제 삶의 한 부분을 또 한 번 공개했습니다.

결과는 제가 댓글을 읽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조회수 260만 이상, 전 세계에서 달린 댓글 7500개 이상. “유튜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이 든다는 것이 두렵고 싫기만 했는데 이렇게 늙어갈 수 있다면 늙는 게 두렵지 않을 거 같아요…”, “논나 할머니처럼 늙을 수만 있다면…”, “기도하시고 잠자리에 드는 모습 본받고 싶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수도자인 자신보다도 더 수도자 같다’는 어느 수녀님의 댓글이었습니다. 글을 통해 제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과연 이런 칭찬을 들을 만한 삶을 살고 있나?’ 자문하며 반성도 했습니다.

댓글을 통해 유튜브 제안을 받고 처음 가졌던 두려움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늙은이의 삶이라고 폄하하지 않고, ‘이렇게 늙어갈 수 있다면 늙음이 두렵지 않다’는 수많은 응원으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처럼 신앙을 갖고 싶다. 다시 기도 시작하겠다’는 글에서는 ‘혹시 가톨릭교회에 누를 끼치면 어쩌나?’ 싶었던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처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던 사실도 직시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나이 드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제가 둔한 걸까요? 아니면 무한 긍정적인 걸까요? 물론 나이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고 얘기할 수야 없지만, 나이 드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가져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기왕에 나이 먹는 거 긍정적으로 담담히 기꺼이 받아들이자. 어차피 태어나면 죽음을 향해 가야 하는 게 피조물 운명인데, 피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저항하지도 말고 세월에 실려 가며 시간을 즐기자. 알뜰히 정성껏’이란 심정이었습니다. 그런 신조로 50대 중반부터 하얗게 변해 가는 머리 염색도 거부하며 ‘할머니’ 소리를 감내했습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님이 번역하셨다는 ‘독일 어떤 노인의 시’ 몇 구절을 옮겨 볼까 합니다. ‘이 세상에서 최상의 일은 무엇일까?/ 기쁜 마음으로 나이를 먹고/ 일하고 싶지만 쉬고/ 말하고 싶지만 침묵하고/ 실망스러워질 때 희망을 지니며/ 공손히 마음 편히 내 십자가를 지자/ (중략)/ 늙음의 무거운 짐은 하느님의 선물/(중략) 이리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면 그것을 겸손되이 받아들이자/ 하느님은 마지막으로 제일 좋은 일을 남겨두신다/ 그것은 기도이다/ 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합장만은 끝까지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하느님이 은총을 베푸시도록 빌기 위해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임종의 머리맡에 하느님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오너라 나의 벗아. 나 너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

장명숙 안젤라 메리치(유튜브 크리에이터 ‘밀라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