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하늘만큼 땅만큼 / 오현주

오현주 카리타스,제2대리구 분당이매동본당
입력일 2023-01-31 수정일 2023-01-31 발행일 2023-02-05 제 332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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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겨울 중반 즈음에 4남매 중 장녀인 나를 유난히도 사랑하시는 친정아버지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수술 후 6개월 동안은 키가 크시고 체격이 좋으셨던 아버지를 감당하기 버거운 친정엄마를 대신해서 용변 처리와 식사를 챙겨드려야 했다.

개신교 신학교를 중퇴하신 아버지는 장로님으로서 신심이 좋으셨다. 투병 중에도 원망 한번 하지 않으셨고, 13년 동안 주 3회 오전 병원에 모시고 다닐 때도 ‘늘 주님이 함께하신다’며 딸과 데이트하듯 기쁘게 받아들이셨다. “빨리 좋아져서 우리 딸이 다니는 성당으로 개종하고 싶다”고 기도를 부탁하셨다. 그러나 너무나 안타깝게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고, 결국 아버지는 천주교 신자가 되지 못하셨다.

2019년 겨울 끝자락에 친정엄마의 어깨 수술로 아버지를 집에서 모시지 못하고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입소 전 비교적 건강하셨던 아버지는 평생을 직업도 생활도 함께한 엄마와의 이별을 감당하지 못하셨고, 면회까지 어려워지면서 아내와 자식을 볼 수 없는 그리움과 고독을 견디지 못하시고 천국으로 떠나셨다. ‘늘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행복하다’는 감사함을 잊지 않으셨기에 마지막은 너무도 평온한 모습으로 주님 품으로 가셨다.

2011년 5월의 마지막 날은 남편 다미안의 편도암 선고일이다. 편도선이 이상해서 동네 병원을 전전하다 서울성모병원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판정을 받았다. 대가족 가장으로서 얼마나 혼자서 많은 것들을 감당했을까? 세상 물정 모르는 아내 및 세 아이들과 연로하신 부모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남편이었다.

온 가족이 어찌할 줄 몰라 기막혀 하는 순간에 정작 남편은 “주님께서 내게 시련을 주시는 이유가 있겠지”라고 했다. 평소 소극적인 신앙인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이 한없이 높게 보였다. 12년이 지난 지금은 부활의 기적을 보여주듯 미사의 은총을 구하며 건강하게 나누는 삶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다시 살게 해주심에 감사드리는 뜻으로 우리 부부는 주변 사람들 반대에도 불구하고 함께 서울성모병원에 시신을 기증하기로 했다.

내 삶을 매 순간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고 이끌어 주셨음에 온 마음으로 감사드린다. 2010년 4월 16일에는 ‘바오로대학 노인대학‘을 열었다. 나의 세 번째 소명도 그렇게 이뤄졌다. 실무 봉사자로 시작하여 지금은 학장으로서 또한 2022년 교구 노인대학연합회 회장으로 이끌어 주시고 함께 해주시어 봉사의 열매 맺기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음에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꽃보다 바오로’에 함께하는 우리 본당 어르신들, 어르신들을 위하는 선한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는 프란체스카, 크리스티나, 안젤리나, 요안나, 비비안나, 안젤라, 로사, 클라라, 클라우디아, 프란체스카Ⅱ 봉사자 선생님들 너무도 사랑합니다.

주 성령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주님 앞에 있나이다. 주님만이 저희를 이끄시니 저희와 함께 하시어 저희 마음에 머무르소서.(시노드를 위한 기도 중)

오현주 카리타스,제2대리구 분당이매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