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콜베 신부님과 베네딕토 16세 교황님 / 장명숙

장명숙 안젤라 메리치(유튜브 크리에이터 ‘밀라논나’),
입력일 2023-01-11 수정일 2023-01-11 발행일 2023-01-15 제 332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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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31일 전 세계 천주교 신자들의 정신적인 지주셨던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께서 선종하셨습니다. 또 한 해가 저무는 마지막 날이라는 의미 때문일까요? 항상 섣달그믐날은 가슴에 만감이 오가게 마련인데, 베네딕토16세 교황님께서 선종하셨다는 뉴스를 접하니 한 해를 뒤로하는 아쉬움과 함께 마치 집안 어른을 잃은 듯 형언하기 힘든 상실감에 온몸이 시렸습니다. 한편으론 ‘항상 조용하고 극도의 품위를 보여주시던 교황님답게 마지막 날 조용히 떠나셨구나’ 싶었습니다.

지금부터 45년 전 1978년 여름, 세례를 받고 바로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습니다. 마침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즉위식이 거행되던 때였습니다. 텔레비전으로 즉위식을 시청하며 ‘비로소 이탈리아에 유학을 왔구나’ 실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교황님 위상은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거의 매일 뉴스에서 교황님이 어디를 가시고 누구를 만났는지, 수요 알현에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보도됩니다. 그만큼 확실하게 사회의 어른으로 존경을 받으며 존재하십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제게 특별하신 분입니다. 1984년 103위 시성식에서 입으셨던 제의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영광스럽게도 제가 그렸기 때문입니다. 당시 서울대교구로부터 교황 성하께서 시성식 때 입으실 제의를 한국에서 준비하는데 미리 일러스트레이션을 준비해 교황청으로 보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때 감격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런 영광스러운 경험으로 성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소식에 섭섭함, 상실감으로 가슴 시렸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 베네딕토 16세 교황님 선종 소식엔 또 다른 이유로 가슴이 시렸습니다.

이탈리아 현지 매체들은 베네딕토 16세를 독일 출신의 조용하고 지적인 분으로 묘사하곤 했습니다. 그런 조용하고 지적인 분이 2006년 5월 28일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교황 자격으로 방문하셔서 했던 말씀과 행동이 기억납니다. 텔레비전 중계로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두 손을 모아 방송을 경청했었습니다.

그때는 잔잔한 미소를 띠시고 두 손은 가볍게 포개신 평소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클로즈업된 표정엔 슬픔과 고뇌가 가득했습니다. 교황님이 하신 말씀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저의 모든 감각을 집중해 받아들인 내용은 저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오, 주여. 어떻게 이런 악의 승리를 당신은 묵인하셨습니까? 그때 당신은 어디 계셨습니까? 왜, 침묵하셨습니까? 이렇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특히 도망친 포로를 대신해 죽음을 자청한 막시밀리아노 콜베 성인 골방을 여러 번 방문했음을 밝히시며 고뇌에 찬 표정으로 교황으로서, 독일의 아들로서 모든 희생자 앞에 용서를 구하신다는 말씀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시편 23장으로 그날 고뇌에 찬 연설을 마치셨던 교황님,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님의 영원한 안식을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고 하여도 두려울 것 없어라. 한평생 주님 집에 살 것입니다.(시편 23장 참조)

장명숙 안젤라 메리치(유튜브 크리에이터 ‘밀라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