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연중 제2주일 -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
입력일 2023-01-10 수정일 2023-01-10 발행일 2023-01-15 제 3327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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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 49,3.5-6 /  제2독서  1코린 1,1-3  /  복음  요한 1,29-34
외부의 표징 너머에 계신 예수님
기도와 묵상으로 성령 체험하고
주님 바라보며 감동과 기쁨 느끼길

도메니키노 ‘안드레아와 시몬(베드로)에게 예수님을 가리키는 요한 세례자’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신학생일 때 유럽 배낭여행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로마에 2박3일 정도 머물렀는데요. 선배 신부님이 2박3일 동안 저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구경시켜 주셨습니다. 제가 도착한 게 금요일이었는데, 토요일쯤에 신부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주일 정오쯤 성 베드로 광장에 가면 교황님을 볼 수 있어. 짧은 훈화도 하시고 강복도 주시니까, 내일은 거기 가 보자.” 그 말을 듣고 교회의 최고 목자이신 교황님을 뵐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고 설렜습니다.

주일이 돼 성 베드로 광장에 나갔습니다. 광장에는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삼종기도를 바치고 잠시 기다리니, 교황청 4층 건물에 창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교황님이 보였습니다. 돌아가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셨는데요. 교황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짧은 훈화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강복을 주셨습니다.

저는 대단한 분에게 강복을 받았다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그리고 선배 신부님께 “저 교황님께 강복 받았으니, 어떤 일이 있어도 사제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요”라고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꿀밤을 한 대 때리시면서 “임마, 교황님이 아니라 그 뒤에 계신 예수님을 봐야지”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그동안 더 중요한 분을 바라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저와 같은 실수를 범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곧 표징에만 머물러 있고, 그 너머에 있는 분을 바라보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예를 들면 사제 너머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우리 신부님은 강론이 어떻고, 외모는 어떻고, 성격이 나와 안 맞고’ 하는 것에 머물러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또 전례에서도 ‘노래가 나랑 맞아, 안 맞아. 미사 분위기가 어떻다’ 하는 것에 머물러 계신 분도 있을 겁니다. 또 공동체 안에서 ‘저 사람이 나와 맞아, 안 맞아. 공동체 분위기가 좋아, 안 좋아’ 하는 것에 머물러 계신 분들도 있겠죠.

그런 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 중요한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표징이 되는 사제의 역할, 전례의 역할, 공동체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표징에는 한계가 있고 제약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요한의 손가락도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리키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데요. 우리의 시선이 요한에게 멈춰 있어서는 안 될 겁니다. 그 너머에 이미 계시고, 와 계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제가 섬에 살 때 한 번은 오후 늦게 배를 타고 섬에 들어왔었습니다. 해가 지고 있었는데요. 구름도 적당히 붉게 물들고, 바다에도 붉은 빛이 감도는 게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몇 장 찍고 나서, 배가 섬에 도착하는 동안 일몰을 감상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주 느리게 변화가 있었습니다. 구름의 모양이나 바다의 색깔, 그리고 해의 위치가 조금씩 변화를 보이면서 지루하지 않은 감동이 지속됐는데요. 아마 세례자 요한도 성령님이 내려오시는 그 장면에 감동했을 뿐만 아니라, 미묘하고 섬세하고 작은 변화를 바라보면서 지루하지 않은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우리도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묵상한다면 그런 체험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보통은 기도하기가 지루하고 힘들지만, 매일 꾸준히 그 자리를 지키고 견디어 낸다면 다를 겁니다. 어느 순간 일몰의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것처럼, 기도 안에 숨어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작은 감동과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전에 기도 중에 하루는 요셉과 성모님이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는 장면을 묵상했었습니다. 복음의 상황은 급박하고 위태로웠습니다. 헤로데가 아기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을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요셉과 마리아는 피신하라는 천사의 말에 따라 급하게 피신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피신하는 요셉과 그 품에 안긴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문득 요셉의 모습이 그리 믿을 만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는 군사들은 무장하고 있었지만, 요셉은 무장한 군인도 아니었고, 군인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해를 입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옷차림과 신발도 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도망가는 데에 적합한 그런 차림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은 자신의 생사가 달려 있고 구원이 달린 중요한 그 일을 위해 ‘이런 요셉을, 시골 청년을 믿어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지나가는데, 그 ‘시골 청년’이라는 단어에서 문득 요셉의 모습이 제 모습으로 바뀌어서 생각됐습니다. 제가 시골에 살면서 시골 청년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부족한 제 모습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예수님이 부족한 나를 신뢰하고 믿어주시는 느낌, 일을 잘 해낼 거라고 믿어 주시는 느낌이 많아서 한참을 감동하고 감사했었습니다. 믿어 주시는 그 모습과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요. 믿어 주시는 주님의 시선과 마음을 생각하면 요한의 고백이 마음에서 흘러나옵니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34)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