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 장명숙

장명숙 안젤라 메리치(유튜브 크리에이터 ‘밀라논나’),
입력일 2022-12-28 수정일 2022-12-28 발행일 2023-01-01 제 332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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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밀레니엄으로 진입했다고 온 세계가 흥분하며 새날을 맞이했던 2000년도 벌써 22년 전입니다. 교황님이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가시는 광경을 텔레비전에서 중계로 본 기억도 이젠 가물거립니다. 벌써 2023년, 서양에는 없는 문화인 ‘육십갑자’로 계묘년 토끼해랍니다.

제가 태어난 집안은 대한민국 서울의 가장 보편적인 가정이었습니다. 할머니, 삼촌과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고, 종교는 불교였습니다. 해가 바뀔 때면 어김없이 할머니께서는 며느리인 어머니에게 ‘가족들 별 탈 없이 무고할지’ 점집에 가서 토정비결이나 새해 신수를 보고 오라고 이르셨습니다.

어른들 말씀하실 때 끼어들면 안 된다는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어떤 예언을 듣고 오셨나’ 궁금해서 귀를 쫑긋하고 안달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신년 해에는 ‘삼재가 들어서 안 좋다’며 만들어 오신 부적을 ‘속옷 깊숙이 달고 다녀라’ 하셔서 혹시 분실하면 불운이 닥칠까봐 살짝 두려워하며 챙기고 신경 썼던 것도 생각납니다.

이렇게 아무런 저항 없이 토속신앙과 불교문화가 접목된 환경에서 성장한 제가 진지하게 종교를 선택해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결혼 후 이탈리아로 유학하러 가기 전, ‘천주교로 세례를 받으면 어떻겠냐’고 남편이 권유 했을 때 처음으로 제 종교와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었습니다.

파이프오르간이 울려 퍼지는 바로크 시대 음악을 가장 좋아하니 크게 갈등이나 거부감 없이 남편의 권유를 받아들였고, 1978년 세례를 받았습니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해서일까요? 사제들의 제의가 우아한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세례를 받고도 냉담과 열심을 반복하던 어느 날, 혼자 힘으론 헤쳐 나가기 힘든 시련이 닥쳤습니다.

“어쩌지? 이 고난을 어찌 혼자 헤쳐 나가지?”, “어렸을 때 집안 어른들이 하시던 것처럼 점쟁이에게 가서 이 고난이 언제 끝날지 점쳐 달래야 하나?”

갈등이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고통에 허덕이며,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몰라 헤매며 힘든 터널을 통과하던 그해 신년 벽두였습니다. 평소 지나던 길의 어느 교회에 붙은 “왜 걱정 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라는 글귀가 제 마음에 훅 들어왔습니다. “맞다. 그래, 어찌 인간이 앞날을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부터 매일미사에 참례하며 모든 걸 주님께 맡기고 기도 속에 지혜를 청하는 삶이 시작됐습니다. 어느 해 신년 피정에서 들었던 소록도본당 주임신부님 강론 말씀 중 한 대목입니다. “하느님을 믿어도 힘든 일은 닥쳐옵니다. 다만 기도로 하느님께 함께 해주십사 청함으로써 어려움을 혼자 감당하는 게 아니라 주님과 함께 견뎌내고 어두운 터널을 외롭지 않게 통과하는 거지요.”

자식 낳고 키우며 사는 이들에게 굴곡 없는 삶은 없다고 봅니다. 저 역시 많은 강과 산을 건너고, 넘어야 했습니다. 산과 강을 만날 때마다, 익숙했던 유년기 방식으로 대처하지 않고 오직 기도로 헤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제 주변의 힘든 터널을 지나는 분들에게 들려드리는 말씀입니다.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장명숙 안젤라 메리치(유튜브 크리에이터 ‘밀라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