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1) 왜 교회가 자살예방에 나서는가?

차바우나 바오로 신부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장
입력일 2022-12-27 수정일 2023-04-17 발행일 2023-01-01 제 3325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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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고립된 이 위한 ‘구원의 방주’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루카 15,6)

요즘 뉴스를 보기가 두려울 만큼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실직을 앞둔 가장, 경제적 어려움과 외로움에 지친 독거노인, 악성 댓글과 증오 표현 등 SNS 사이버 공간에서의 폭력 피해자,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던 청소년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수능 성적을 비관한 수험생,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점점 희망을 잃어가는 청년들이 스스로 삶을 놓아버리고 있습니다. 또한, 빙산의 일각처럼 자살통계에 잡히지 않거나 미수에 그쳐 주변에서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자살자의 문제를 개인 혹은 그 가정의 문제로 여기는 경향이 강합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삶이 무너지고 가정이 해체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면 연민을 느끼면서도 ‘우리집이 아니라 다행이야’라고 안도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렇게 죽을 용기로 왜 살지 못하느냐’고 탓하기도 합니다. 이는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막상 자신도 같은 상황에 놓이면 이웃에게 외면당할지 모른다는 체념을 보여주는 태도입니다.

자살은 일반적으로 사회 안에서 배제되고 금기시되는 주제입니다. 더구나 교회 안에서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자살을 선택한 이들이나 자살위기자들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거부 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고립되어 있고, ‘혼자’라고 느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는 없지만 혼자 죽을 수는 있습니다. 이들은 심적인 고통을 느끼면서도 이를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며 홀로 고통 속에 시달리다 홀로 죽어갔습니다.

교회는 소외된 이들을 품어주는 곳인데 사회에서 거부당한 채 ‘혼자’가 된 자살위기자들이나 자살유가족들을 교회마저 거부한다면 이들이 있을 자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잘 돌보지 못한 잘못은 분명하지만 판단하는 것은 하느님의 몫이고, 이웃의 고통과 함께 해주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이며 구원의 방주가 되어야 합니다. 이웃과 함께 하는 연대는 인간 삶의 조건이 아닌 필수이며 누군가에게는 생존 그 자체가 됩니다. 공동체는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찾아 공동체 안으로 넣어주고 함께 함으로써 이웃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전하고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교회, 고립된 이들을 위한 공동체가 되도록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재촉하고 계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차바우나 바오로 신부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