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대림 특집-마구간을 밝히는 이들을 찾아서] (2)한사랑가족공동체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2-11-30 수정일 2022-11-30 발행일 2022-12-04 제 3321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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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서 살아가지만, 서로를 위해 나눌 수 있어요”
작은형제회, 2007년부터 운영
파주·양양 등 90여 명 ‘대식구’
독립 생활하지만 기도·식사 함께

한사랑가족공동체 식구들이 사는 쪽방.

서울 중림동. 도로 하나를 두고 높이 솟은 빌딩들 맞은편에 촘촘하게 쪽방이 모여 있다. 커다란 타워크레인이 움직이는 맞은편에 수레를 지고 힘겹게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쪽방. 누군가는 냄새난다고 길을 돌아가고, 아직도 이런 곳이 있냐고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이곳에도 끝없는 기쁨이 샘솟고 있다. 2000여 년 전 예수님이 오셨던 것처럼. 2022년 오늘날 마구간에 불을 밝히는 ‘한사랑가족공동체’를 찾았다.

한사랑가족공동체

“OOO씨~ 이것 좀 도와줘요”, “신부님~ 실장님~ 학사님~.”

여기저기서 서로를 부르고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좁은 골목을 꽉 메운다. 쪽방 한구석에서는 잠을 청하고 있는 이들도 있고, 묵묵히 골목을 청소하는 이들, 식사 준비를 돕는 이들까지 명절에 모인 여느 대가족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공동체 이름은 ‘한사랑가족공동체’, 말 그대로 사랑으로 이어진 가족 공동체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가 운영하고 있는 이곳은 15년 전 수도회 소속 윤석찬(프란치스코) 신부가 시작했다. 윤 신부는 2007년 서울 중림동에 위치한 이곳 쪽방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용산본당 빈첸시오회는 노숙인 동사 방지를 위해 방을 구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고 윤 신부와 인연이 닿아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하나의 거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당시 수도회가 운영했던 무료급식 공동체의 후원을 받아 전세방을 얻어 구심점을 마련했다. 이듬해에는 하나둘 모여든 쪽방 식구들과 식사를 하기 위해 옆방을 하나 더 얻었고, 작은 사무실도 마련했다. 그렇게 공동체는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현재 중림동 한사랑가족공동체 쪽방에는 50여 명이 거주하고 있고, 공동체와 연계한 농장과 피정집이 있는 파주와 양양 공동체, LH·SH 주택 등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까지 모두 90여 명이 한사랑가족공동체 식구로 살아가고 있다.

노숙 경험이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결손가정과 가정폭력으로 인해 방황하다 이곳을 찾은 이들도 있다. 일류대학 출신, 지상파 방송국 PD, 대형 음식점 사장 등 과거가 화려했지만 거센 풍파를 겪고 이곳에 정착한 이들도 있다.

윤 신부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만큼 각자의 생활 방식도 뚜렷하지만, 하나의 공동체 식구라는 개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식사공동체, 영적공동체, 경제공동체

모두 각자의 일을 하다 식사 시간이 되면 공동체 거실로 모인다. 삼삼오오 모여 자연스레 식사를 하고 다시 흩어진다. 그리고 오후 2시가 되면 다시 거실로 모인다. 묵주기도 시간이다. 90여 명 중 65명이 신자고, 이 중에서도 묵주기도는 원하는 이들만 한다. 하지만 어느 시간보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 모든 일정을 제쳐두고 참여하는 식구들도 많다.

군 제대 후 공동체 체험을 하고 있는 전주교구 허민(스테파노) 신학생은 “오후 2시는 거실이 식당에서 경당으로 바뀌는 시간”이라며 “묵주기도 5단과 하느님 자비의 기도 5단을 소리 내서 바치는데, 이렇게 순수하게 기도를 바치는 이들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분들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자율적인 생활 안에서도 식사를 통해, 기도와 미사를 통해 끈끈한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 처음 들어온 이들에게는 2~3개월간 월임대료와 용돈을 지급한다. 이 시기가 지나면 능력이 있는 이들은 일자리를 찾게 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기초생활수급을 받게 한다. 각자의 탈렌트를 살려 누구나 자립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수입이 생기면 공동체에 저금해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제도도 있다. 공동체 자체적으로 ‘저축관리계약서’를 만들었다. 의문이 있을 때는 물어보고, 해소되지 않으면 언제든 본인이 자율적으로 관리하게 한다. 현재 70여 명이 저축에 참여하고 있다.

윤 신부는 “어느 날 한 식구가 지나가는 말로 본인은 100만 원이 있으면 모두 쓰고, 없으면 또 안 쓰게 된다고 얘기했다”며 “성령의 이끄심으로 받아들여 공동체 저축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소박하지만 자발적 경제공동체가 이뤄진 것이다. 이들은 각자 사생활이 있다. 하지만 홀로 남겨지지 않는다.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의 삶은 계획한다고 절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공동체 식구를 통해 성령께서 이끌어주시지요. 거기에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식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식구들.

가난, 그 충만한 기쁨 안에서

“가난한 이들은 우리의 스승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이들 안에서 복음화됩니다.”

윤 신부는 가난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얼마나 큰 주님의 선물인지 가르쳐준다고 했다. 그는 “인간은 본래 타락하기 이전에 하느님 안에서 하나였다”며 “가난한 사람에 대한 우선적 선택은 한 몸의 원리상 당연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결코 대단한 일이 아니고, 삶의 여정을 함께하며 그저 동반하는 것이 이곳에서 역할”이라면서 “그때 내면에서 솟아오는 기쁨은 이 세상 것이 아닐 정도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동체 생활은 단순하다. 자전거 부품을 수리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든지, 전구 교체나 집안 청소, 김장 준비를 하는 등 그저 소소한 일상을 함께하는 것이다.

8년째 공동체에서 함께하고 있는 작은형제회 백준호(에드몬드) 신부는 “가난하면 몸은 불편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서로가 필요한 부분을 메워준다”며 “물질로 채워질 수 없는 충만함이 있다”고 밝혔다.

한 식구는 과거 두부 공장을 운영했던 솜씨를 발휘해 새벽같이 공동체에서 두부를 직접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후에는 배달 아르바이트도 한다. 그는 “노후에 이곳 식구, 형제들과 함께 자그마한 농장을 일구고 싶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안에는 식구, 형제라는 공동체성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윤 신부와 공동체 시작 때부터 함께한 김주미(소화데레사) 실장은 “이곳은 분명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며 “식구들과 있으면 소박함 안에서 뭔지 모를 기쁨이 솟구쳐 지금껏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사랑가족공동체에서 단 몇 시간 머물렀지만, 함께 얘기하고 밥을 먹으며 왜인지 모를 기쁨을 느꼈다. 공동체 구유를 만들면서 건넨 허민 신학생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식당이면서 사랑방이 되고, 또 경당으로 바뀌는 이곳에 분명 아기 예수님이 오시리라 생각합니다. 가난하지만 서로를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여기가 바로 예수님의 마구간 아닐까요.”

한사랑가족공동체 식구들은 매일 오후 2시, 거실에 모여 묵주기도를 봉헌한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