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대림 특집-마구간을 밝히는 이들을 찾아서] (1) 안산빈센트의원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2-11-22 수정일 2022-11-22 발행일 2022-11-27 제 3320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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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도 갈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을 우리는 주님으로 섬깁니다”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운영
외국인 많은 안산시에서 진료비 ‘0원’
봉사자·후원 등으로 주말에도 문 열어
“나라·언어 장벽 넘어 가족으로 대해”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떠올리며, 안산빈센트의원은 가난한 이들을 맞이한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던 이주민과 난민들은 이곳에 와서야 마음을 놓는다. 사진 안산빈센트의원 제공

2000여 년 전,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그 낮은 곳에서 소외된 이들을 친구라 부르며 목숨까지 바쳤다.

다가온 대림 시기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와서 인류를 구원해 주시길 기다리는 때다.

본지는 올해 대림 특집으로 2022년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다면 한국교회와 사회 안에서 어디를 가장 먼저 찾으실 지를 생각해봤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을 헤아리며 먼저 그리스도의 마구간을 밝히고 있는 기관들을 찾아본다.

그 첫 번째는 안산빈센트의원(원장 양수자 이다마리아 수녀)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의 주님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의 주님입니다.’

안산빈센트의원 문패에 적힌 글귀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외국인 근로자와 불법체류자, 노숙인과 주민등록증 말소자 등이다. 어느 집단에도 속하기 힘든, 오늘날 가장 가난하다고 불리는 이들이다. 현재는 외국인 근로자와 난민들이 가장 많이 찾고 있다. 안산빈센트의원은 문패의 글귀처럼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로 여기며 진료하고 있다.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는 1987년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안산 지역 주민들을 위해 가정의학클리닉을 운영하다 2004년 외국인 근로자 및 가난한 이들을 돌보기 위한 무료 의원으로 안산빈센트의원을 개원했다.

안산시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한 곳이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안산시에 거주하는 외국인 비율은 13.2%다. 전국 평균 4.1%를 한참 웃돌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외국인 비율이 높은 지역에 속한다. 5%가 넘으면 다문화사회라고 불리지만, 이주민들이 편히 기댈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안산빈센트의원은 그런 상황에서 이주민과 난민을 이웃으로, 예수님으로 여기며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현재 40여 개국 외국인을 포함해 1만5000명 이상이 환자로 등록돼 있다.

영원(0원)의 행복

안산빈센트의원의 진료비는 ‘0원’이다. 말 그대로 무료진료다. 하지만 진료 과목은 여느 병원 못지않다. 간호사와 약사, 행정업무 등을 보는 6명의 수녀들과 외부에서 자원봉사를 오는 의료진들이 이비인후과와 산부인과 등 14개 진료 과목을 운영하고 있다. 환자 대부분이 노동자들이라 주말에도 문을 열고 있다.

원장 양수자 수녀는 “우리 뜻에 함께하는 기업의 정기적인 후원과 여러 후원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금액으로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수조차 없었던 우리 이웃들을 보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배려 덕분에 전국 곳곳에서 환자들이 찾는다. 얼마 전에는 버섯 농장에서 일하는 태국 출신 외국인 노동자가 담석이 생겨 전라도에서 찾아오기도 했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린 시기에도 진료는 계속됐다. 당뇨나 고혈압 환자들은 약이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방호복을 입고 셔터를 내려 철창 사이로 약을 전달했다. 양 수녀는 “진료비보다 약값이 비싸 다른 병원으로 가지 못하는 분들이 있어 문을 닫을 수 없었다”며 “하지만 우리 병원을 다녀가신 분 중에는 아무도 감염자가 없었다는 감사한 체험도 했다”고 밝혔다.

환자들도 받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여러 방법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온다.

의원의 도움으로 아이를 출산한 가나 출신 이주민은 자신의 자녀에게 “도움받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 어린이가 된 자녀와 함께 의원을 다시 방문했다. 수녀들은 기쁜 마음으로 아이에게 한복을 입혀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출혈이 너무 심해 의원을 방문한 태국 출신 이주민은 응급 수술을 통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자궁경부암 4기였다. 급하게 본국으로 돌아가 치료에 전념하며 SNS를 통해 매일같이 소식과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목에 구멍을 뚫어 기계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알제리아 출신 이주민은 늘 자그마한 선물을 가지고 의원을 방문한다. 그의 사정을 아는 수녀들은 빈손으로 오라고 거듭 말하지만, 그는 “여기 오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며 계속해서 마음을 전하고 있다. 본인들 나라의 고유한 음식을 가지고 와서 나누는 경우도 많다.

양 수녀는 “물질적으로 크게 오고 가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많다”며 “그렇게 나라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가족의 울타리가 넓어져 간다”고 말했다.

기다림과 환대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 방이 없어서 거절을 많이 당했습니다. 결국 마구간으로 들어갔죠. 방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가난한 환자들이 예수님입니다. 그들을 기다리고 환대하는 게 대림 시기를 보내는 우리의 마음가짐입니다.”

의원은 환자들을 그리스도로 여기며 기다리고 환대한다. 양 수녀는 “이주민들은 늘 주눅들어 있고, 더욱이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경계하는 경우도 많다”며 “응급한 치료도 중요하지만 수도자로서 환대를 통한 영적 치유에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은 타지에 적응해야 하고, 일을 구하기 쉽지 않아 스트레스성 질환이 많다. 마음의 병이 육체의 병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또한 지금은 ‘보트피플’처럼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갑작스레 난민이 된 이들도 많은 상황이다. 양 수녀는 “예전에 없었던 홍수나 자연재해로 인한 기후난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이들을 위한 지원이나 혜택은 턱없이 부족하고, 기회는 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단일민족이라는 우리나라 특유의 시선도 이주민들의 적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교회가 변방으로 나아가 이주민을 형제처럼, 가족처럼 품어 안자고 하신다”며 “봉사자와 후원자들에게 교육하는 첫 번째도 환대의 정신, 그리고 마음을 어루만져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타지에서 얼굴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돈이 없다는 이유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안산빈센트의원. 오늘도 의원은 예수님을 잉태한 성모님의 방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환자들을 기다리며 불을 밝히고 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