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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4. 이병호 주교(9·끝)

정리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22-11-08 수정일 2022-11-08 발행일 2022-11-13 제 3318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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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주시는 신앙 감각으로 함께 걸어갑시다”
양 냄새 풍기는 목자와 더불어
인도자·예언자 역할 목표 삼아
함께 걷는 여정 ‘시노달리타스’
성령 통해 받은 신앙 감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 적극 동참해야

이병호 주교는 어느 행사장에서든 신자들의 목소리, 그들의 신앙체험에 깊이 공감하며 미소와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이병호 주교 제공

프랑스 파리 유학 중 쓴 논문 제목은 ‘성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 나타나는 공본성적 인식과 그리스도인 삶에서 수행하는 그 역할’이었습니다. 까다로운 주제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처음으로 내신 문건 「복음의 기쁨」에 ‘공본성’(共本性·connaturality·나와 상대방이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신앙 감각’, ‘신앙 본능’ 등의 단어를 정식으로 쓰시면서 같은 생각을 표현하셨습니다. 다음 해인 2014년에는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에서 「교회 생활에서의 신앙 감각」이라는 문헌을 발표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일화 하나가 그 내용을 아주 잘 밝혀줍니다.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는 아주 친근한 사이여서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두 사람 사이에 농담조의 대화가 오갔습니다. “당신은 돼지 같이 보이는 군요.” “임금님은 부처님 같이 보이는 군요.” “나는 당신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는데, 당신은 왜 정반대로 말합니까?” “자기 안에 부처가 있으면 모든 사람이 부처로 보이고, 거기 돼지가 있으면 세상 모든 사람이 돼지로 보이는 법입니다.”

머리로 상징되는 지성, 심장으로 상징되는 감성은 작동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짐승은 본능과 감각적 판단으로 살아가는데, 사람도 보고, 듣고, 느끼는 등 5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을 가지고 판단하는 방식은 짐승과도 차이가 없습니다. 이를 감각인식이라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늦게 결혼해서 얻은 자기 아들 니코마코스를 훌륭한 사람으로 기르기 위해서 쓴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단 한 마디를 모퉁이 돌로 해서 축조된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 사람은 그가 어떤 질質의 인간인가에 따라서, 그가 좋아하는 것/ 목표가 거기에 따라 (달리) ‘보인다’.” ‘시각’이라는 감각이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1600여 년 후,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원칙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공본성, 신앙 감각 등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축조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7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 중요성을 또 한 번 크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이런 방향의 흐름이 특히 큰 사조를 이루어왔습니다. 그 가장 유명한 예의 하나가 춘추전국시대 막강한 제왕이었던 환공과 당대 노예와 다를 것 없던 신분의 윤편 사이에 오간 대화입니다. 하루는 환공이 고대(高臺)에 앉아 옛 현인들의 어록을 읽고 있었다지요. 마차 바퀴를 만드는 일에 한평생을 바쳐온 윤편이 그 모습을 올려다보고 한 마디 하는 데에서 대화가 시작됩니다. “지금 읽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선현들의 글이니라.” “그분들이 살아 계신가요?” “돌아가셨느니라.” “그렇다면 지금 임금님께서는 그분들의 찌꺼기나 만지작거리고 계신 거군요.” “네 이놈, 어느 안전이라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느냐? 네놈이 한 말에 그만한 이유가 있으면 살려두려니와, 그렇지 못하면 당장 목을 치리라.”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인은 지금 이 나이에 이르도록 평생 바퀴를 만들어 왔습니다. 이제는 힘도 딸리고 해서, 생각 같아서는 제 자식놈에게 일을 물려주고 좀 쉬고 싶습니다만, 나무 바퀴를 조금 덜 깎으면 거기에 씌울 쇠바퀴가 들어가지 않고 조금 더 깎으면 헐거워서 곧 빠져나가고 맙니다. 말로 하자면, ‘더도 덜도 말고 정확하게 깎아서 꼭 맞게 만들어라’ 이러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말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익힌 ‘손 감각’으로만 터득할 수 있는 것이어서, 자식놈에게도 말로 가르쳐줄 수가 없어, 70이 된 이 나이에도 소인이 직접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목자가 양‘냄새’(후각)를 풍겨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으로부터 그 냄새를 감지한 사람들이 처음부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 분의 말씀이나 쓰신 글에서도 사람들은 양 냄새를 느낍니다. 그분이 최고 목자가 되신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몇 사람과 가졌던 대담이 「하느님께 활짝 열린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책이 묶여 나오는 과정에, 출판사에서 원고를 검토하던 분이, 처음에는 그저 별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읽다가, 얼마 못 가서 자기도 모르게 원고지에 흥건히 눈물을 쏟았다고 하지요.

2021년부터 전 세계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시노달리타스’, 곧 ‘함께 걷는 길’ 과정은 위계질서에 속한 성직자들뿐 아니라, 누구보다도 교회 구성원의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하느님 백성 전체가, 그 옛날 모세 시대 때처럼 함께 걸어가면서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당연히 수행해야할 인도자, 예언자, 목자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이고 활기차게 하자는 목표를 걸고 있지요. 그런데 그 가운데에는 윤편처럼 지적으로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이들이 상당수가 있을 텐데, 그런 이들이 무슨 근거와 자격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단 말일까요? 그 대답이 참된 신앙인이면 누구에게나 성령께서 주시는 ‘신앙 감각’입니다. 감각이기 때문에 지성과는 대조되면서, 지성적 인식과는 서로 보완관계에 있지요.

열두 제자들과는 별도로, 장차 하느님 백성의 대부분을 이루게 될 평신도들의 상징이기도 했던 일흔 두 제자가 아무 장비도 없이 파견되었다가 뜻밖에도 큰 성과를 거두고 돌아와 보고했을 때, 주님께서는 “성령을 가득히 받아” 복음서 전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기뻐 뛰시며(exultavit) 말씀하셨지요.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루카 10,21 공동번역)

정리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