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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46)사제 지속 양성에 대한 하나의 생각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11-01 수정일 2022-11-01 발행일 2022-11-06 제 3317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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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진정한 사명과 소명을 늘 성찰하며 살아야 한다
사제로 살며 겪는 도전과 위기
극복할 전방위적 지속 양성 필요
어떤 목적과 지향으로 일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해야

2015년 4월 22일 범교구 차원의 사제 평생 교육기관인 주교회의 엠마오 연수원에서 정희완 신부(맨 오른쪽)가 지도하는 신학 강의 중 연수 사제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제들의 지속적인 양성을 위해서는 신앙과 영성을 위한 다양한 사제 모임이 활발해져야 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사제 삶의 풍경

교구 사제로 살고 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사제가 되어 내년이면 사제 생활 30년이 된다. 사제로서 별다른 힘듦과 어려움 없이 살아왔다. 청춘을 바쳐 하느님과 신자들을 위해 살겠다는 한 시절의 맹세는 그저 아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신앙적, 영적 부족함이 많은 삶을 살았다. 치열한 사목적 헌신의 삶을 살지도 못했다. 좋아하는 책들을 읽고 공부하며, 글 쓰고 강의하는 지적 한량의 삶을 산다. 사제의 삶에 대해, 사제 지속 양성에 대해 말할 자격이 별로 없다는 고백이다.

사제로 살아온 시간만큼 과연 성숙해졌는지. “사제는 자신의 지속 양성에 일차적으로 책임이 있는 당사자이다.”(「사제의 직무와 생활 지침」 105항) 신학생 시절부터 늘 귀 따갑게 듣던, 사제로서 인성과 지성과 영성의 양성과 사목적 성숙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종교적 관습과 기술에만 익숙해져 가는 것은 아닌지. “사제를 위한 계속 교육의 정신과 형식은 바로 목자로서 사랑입니다.”(「현대의 사제 양성」 70항) 사제 생활의 연륜만큼이나 신자들을 향한 사랑이 정말 깊어가는지. 가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교회 구석구석에는 최선을 다해 직무에 충실하고 영적 성숙함으로 살아가는 사제들이 여전히 많다. 하지만 사제로서 삶을 시작한 그 시절의 치열함과 순정함이 많이 퇴색되어가는 모습을 자주 발견한다.

사제들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을 보면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할 수 있다. 사제들의 만남과 대화 안에서 진지한 이야기들이 사라져 버렸다. 취미와 기호, 스포츠 경기와 오락, 정치적 호오, 일상의 삶 안에서 우리를 귀찮게 하는 어떤 일들에 대한 잡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목적 고민과 문제점들을 나누거나 우리들의 신앙과 영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을 귀찮아하고 버거워한다. 간혹 사목적 관심을 이야기할 때도 자기 성찰적이라기보다는 자기주장을 피력하고 타자를 판단하고 심판하는 내용이 더 많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가 고민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며 살고 있다는 현실의 반증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사제들이 나누는 대화와 그 내용을 통해 사제 삶의 모습을 전부 재단할 수는 없다. 사제들은 저마다의 방식과 내용으로 자신의 길에 대한 고민과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많은 사제들의 모습에서 공부와 성찰과 일상적 수행의 부재를 발견한다고 말하면 너무 지나치게 부정적인 평가와 진단일까. 사제들의 문화 속에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이 잘 마련되지 않아서일까. 사목의 현장에서 숱한 신자들과 복닥거리며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동료 신부들과는 가볍고 편안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일까.

사제의 일상을 살펴보면, 생각보다 바쁘다. 성사 전례를 거행하고, 본당 안에서 숱한 행사와 친교 모임에 참여하고, 다양한 신자들과 관계를 맺고 조율하며 살아가느라 헉헉거린다. 사회 복지 등의 특수 사목에 종사하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사제의 삶은 성사 집전을 제외하고서는 많은 경우 관리자와 행정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구조다. 영적 수행자와 신앙 교육자로서의 모습은 빈약하다. 사제 삶의 구조를 어떻게 쇄신하고 사제들의 일상 문화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 지속 양성의 방향

사제 지속 양성에 관한 두 개의 보고서를 읽었다. 작년 주교회의 차원에서 시행한 지속 양성에 관한 전국 사제 설문조사 결과 보고서와 2001년 미국 주교회의에서 발간한 사제 지속 양성을 위한 기본 계획서다. 통계적 여론조사가 갖는 설문의 피상성과 응답의 즉흥성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사제들 삶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었다. 미국 주교회의 문헌은, 사목적 환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제 삶의 여정에서 직면하는 도전과 위기에 대한 진단과 지속 양성의 방향에 대한 미국교회의 성찰을 보여준다.

미국교회의 문헌이 조금 더 체계적인 진단과 대응을 담고 있다. 이 문헌에 따르면, 사제가 겪는 도전과 위기는 신체적, 심리적, 영적, 직무적 차원에서 발생한다. 도전과 위기를 극복하고 사제 삶의 쇄신과 사명 수행을 위해서 인성, 지성, 사목, 영성 양성이라는 전방위적 지속 양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주교회의 문헌은 일반적으로 사제가 직면하는 위기를 크게 세 가지로 규정한다. 첫째, 정체성의 위기다. 주로 초임 신부 시절에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사제적 삶의 패턴에 익숙하기도 전에 다양한 내외적 갈등과 유혹의 문제들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둘째, 소임 전환에서 발생하는 위기다. 공간과 업무의 변화는 창의적 요인으로 작동되기도 하지만 정서적 불안과 세속적 욕심을 낳기도 한다. 사제들에게 인사는 때때로 예민한 문제가 된다. 셋째, 운영과 유지라는 행정 임무에 집중하는 데서 오는 소명 의식의 부재다. 사제직의 본질적 사명과 목적과 지향을 놓쳐버리고 일에만 매몰될 위험이 많다는 것이다. 결국, 사제적 자긍심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 세속적 속물화와 지위적 권력화를 경계하는 것, 사제의 진정한 사명과 소명이 무엇인지를 늘 성찰하며 살게 하는 것이 지속 양성의 목표와 방향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 만남, 대화, 참여

개인적 차원, 교구적 차원, 전국적 차원에서 피정과 연수와 교육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어떤 프로그램적 실행을 통해 참다운 지속 양성이 이루어질까.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항상 프로그램적으로 대처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자극과 동기를 부여하고 변화와 성숙을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본질적 해결이 아니다. 사제 삶의 구조와 문화에 대한 전반적 반성과 성찰이 더 절실히 필요하다.

「현대의 사제 양성」 80항에 나오는 고전적 해결책이 뜻밖에도 가장 혁신적이다. 문헌은 세 가지를 제안한다. 주교와 사제들의 만남, 사제들을 위한 영성 모임, 함께 공부하는 모임이나 함께 반성하는 모임이다. 주교와 사제들이 자주 만나야 한다. 교구의 사목적 비전과 현안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프라도, 포콜라레 등 신앙과 영성을 위한 다양한 사제 모임이 활발해져야 한다. 실천적 사목을 위한 이론적 공부 모임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사목의 실제적 현장, 즉 사람과 교회와 세상을 정확하게 읽기 위한 인문·사회학적 공부 모임도 많아져야 한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의 현장에 참여하는 모임도 있어야 한다. 사제의 현실과 교회의 현실을 반성하고 성찰하며 공부하는 모임도 절실히 요청된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고 물어야 한다. 과연 어떤 목적과 지향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한나 아렌트는 질문하지 않음, 생각하지 않음이 악이라고 했다. 성령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이 생각과 질문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