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퇴비장’ 법제화 논란 / 인간 존엄성 해치는 사후 ‘퇴비화’ 용납 안 돼

염지유 기자
입력일 2022-10-11 수정일 2022-10-11 발행일 2022-10-16 제 3314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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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캘리포니아주 허용 방침
시신을 퇴비로 흙과 섞으면
산골 행위와 다르지 않아
교회, 법안 폐지 지속 촉구

시신을 거름용 흙으로 만들기 위한 퇴비장 준비 과정을 보여주는 모형 이미지. 출처 미국 퇴비장 업체 리컴포즈 홈페이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 죽은 뒤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퇴비가 돼도 괜찮을까?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2027년부터 인간 퇴비장을 허용하기로 했다. 퇴비장은 시신을 철제용기에 담아 풀, 나뭇조각, 짚 등 생분해 원료로 채운 뒤 30~45일 동안 자연 분해해 퇴비로 만드는 장례 방식이다. 퇴비장 법제화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 워싱턴주가 처음 도입한 후로 오리건주, 콜로라도주, 버몬트주가 뒤를 이으며 확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식을 접한 우리나라 네티즌들도 “한국도 도입하면 좋겠다”, “자연과 하나 되는 것이고 친환경적이다”라는 등 긍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인간을 퇴비로 쓴다는 게 거북하다”, “인간 몸을 일회용품 취급하는 행위”라는 비판 의견도 있다.

미국 가톨릭교회는 이를 꾸준히 반대하며, 법안 폐지를 촉구해 왔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소멸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다. ‘죽으면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지만, 부활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 육신에 썩지 않는 생명을 주시고 육신과 영혼이 다시 결합한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교회는 장례 방법으로 매장을 권장한다. 매장이 ‘육신의 부활’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육신을 향한 경건한 마음과 육신의 존엄함을 보여주는 장례 방법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화장은 허용한다.

단, 유골을 흩뿌리지 않고 이름을 표기해 거룩한 곳에 모셔야 한다. 유골을 뿌리는 산골 행위는 육신의 완전한 소멸이자 범신론, 자연주의, 허무주의 표현이 될 수 있어 금지한다. 인간 몸을 퇴비로 사용해 흙과 뒤섞이게 하는 것도 산골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퇴비장을 찬성하는 이들은 매장이 토지 부족 문제와 토지 오염을 일으키고, 화장은 이산화탄소를 상당량 배출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운 퇴비장이야말로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이상적인 장례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흙에서 온 사람이 흙으로 돌아가는 섭리라며 자연주의적 사고도 표출한다.

2016년 교황청 신앙교리부에서 발표한 죽은 이의 매장과 화장된 유골의 보존에 관한 훈령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하여」에 따르면, 교회는 죽음을 인간의 완전한 소멸, 자연이나 우주와 융합되는 순간으로 여기는 그릇된 사상들을 용납하지 않는다.(3항) 그 어떤 위생적, 사회적, 경제적 이유들에 호소한다 해도 이 같은 사상이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힌다.(7항)

전례학 박사 안봉환 신부(스테파노·전주 문정본당 주임)는 “인간은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똑같이 존엄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며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피조물인 인간을 퇴비화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일이고, 동물과 인간을 동일하게 여기는 행위로도 비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퇴비장에 적용하는 것은 성경 말씀을 변질시켜 해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