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첫 번째 질문인 ‘진화는 진보와 동일한 개념인가?’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를 간략하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진화론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역시도 고민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우리가 ‘진화’라는 말을 접할 때 가장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바로 ‘진보’(progress)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진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보다 미래에 점점 더 좋아지는/발전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죠. 몇몇 진화론자들은 진보라는 추상적인 표현보다 더 구체적인 과학적 개념으로 ‘복잡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기도 합니다. 이들에 따르면, 진화는 복잡성이 증가하는 과정인 것이죠.
복잡성의 증가로서 진화를 해석한 단적인 예로는 베이징 원인(Homo erectus pekinensis)을 발견한 탐사대를 이끌었던 예수회 신부 피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S.J, 1881~1955)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인간 현상」(Le Phénomène Humain)을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의식의 복잡화의 증가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물질, 생명, 인간, 초의식으로의 진화 과정을 당시의 물리학 및 진화 생물학의 개념들을 빌려 일관되게 통합적으로 설명하려는 전대미문의 시도를 하였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떼이야르 신부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시죠.
하지만 떼이야르 신부님을 비롯해서 ‘진화’를 ‘진보’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보는 소위 정향진화론(orthogenesis)의 관점을 주장한 학자들은 20세기 이후 신다윈주의 학자들로부터 크게 비판을 받게 됩니다. 단적인 예로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는 정향진화론적 사고를 맹렬히 비판하면서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일 뿐이며, 최종 목적도 방향성도 없는 변이 과정 그 자체”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하였습니다. 현재의 많은 진화론자들은 굴드의 견해를 지지하는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