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성모님의 손(2)

한경옥 마르가리타 시인
입력일 2022-08-31 수정일 2022-08-31 발행일 2022-09-04 제 330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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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받자마자 나는 곧바로 냉담교우가 되고 말았다. 교리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모든 것이 낯설고 어설프기만 했다. 그때는 성격이 워낙 까칠한데다 새침데기여서 성당에 함께 다닐 만큼 친한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는 대모님도 면담해주신 수녀님이 급하게 소개시켜 주신 분이었는데 영세 전에 한 번 통화하고는 세례식날 만난 것이 전부였다. 설상가상으로 언니의 전화를 받고 나를 이끌어 주신 수녀님은 곧바로 다른 데로 가셔서 성당에 정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나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겠다는 수녀님과의 약속은 까맣게 잊고 휴일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거나 놀이공원에 다니느라 주일미사에 빠지는 건 다반사였다. 묵주기도는 온갖 잡생각이 떠올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똑같은 성모송을 왜 꼭 열 번씩 외워야 되는지 이해도 안 되거니와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입으로만 외는 기도가 주님께 통할 것 같지 않았다. 더군다나 주일미사에 빠질 때마다 해야 하는 고해성사는 너무 부담스러워 ‘다음 주에도 일이 있는데 한 주 더 쉬고 하지 뭐’하는 마음으로 미루다 보니 자연스레 ‘쉬는 자’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우리 구역의 구역장이라는 분에게 전화를 받았다. 구역 식구들 명단을 보고 내가 신자인 걸 알았다면서 나를 반장으로 추천했으니 만나자는 거다. 내가 지금 성당에 나가지도 않는데 무슨 반장이냐고 어이없어 하니까 ‘그래도 우리가 한동네에 사는 교우이니 얼굴이나 한 번 보자. 집으로 갈 테니 물 한 잔만 달라’고 한다. 그것까지 거절하는 건 너무 야박한 것 같아 수락을 했는데 뽀글뽀글한 펌 머리의 늙수그레하고 촌스러운 아줌마가 들어오시는 거다. 그분은 마뜩치 않아 하는 내 눈치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고 젊은 교우를 만나서 반갑다며 반장 일을 꼭 좀 맡아달라고 막무가내로 조르는 거였다. 싫은 내색을 감추지 않으며 반모임에 나가본 적도 없고 지금은 쉬고 있는 데다 아이들이 어려서 못한다고 거절하는 내게 일은 본인이 할 테니 그냥 나오기만 하란다.

나는 ‘교우들끼리 자주 만나서 대화도 하고 기도도 함께 하다보면 정이 든다. 그러다보면 신앙심이 깊어지는 거다. 혼자 독불장군 식으로 지내면 결국에는 쉬게 되더라’는 그분의 말씀에 공감이 되기는 했지만 그 후에도 여러 통의 전화를 받고서야 마지못해 반모임에 나갔다. 그런데 나가보니 모두 연세가 많이 드신 할머니들이라 더욱 정이 떨어져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만 있다가 오곤 했다. 그런데도 그분은 젊은이가 오니 생기가 돈다며 떡이나 과일을 건네주시고 나와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매번 잊지 않으시는 거다.

매달 어김없이 전화를 하고, 반모임에 가기 싫어서 일부러 전화를 안 받으면 주차장에서 내 차를 확인하고는 초인종을 눌러대는 ‘스토커 같은 이상한 아줌마’ 때문에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그러다가 문득 ‘저 분은 왜 본인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는데 딸같이 어린 사람이 뻣뻣하게 구는데도 어르고 달래면서 성당으로 이끌어주려고 저렇게까지 애를 쓰시는 걸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 순간, 퍼뜩 깨달았다. 성모님께서 그분을 통해 다시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아주시는 것이라는 걸.

한경옥 마르가리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