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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 단상] ‘우리의 아버지 오영선’

오안라 안나 명예기자,
입력일 2022-08-24 수정일 2022-08-24 발행일 2022-08-28 제 330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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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명. 처음에는 상상도 못한 숫자였다. 아버지의 ‘구순기념 가족문집’을 제안했을 때, 찬성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과연 몇 명이나 글을 써서 주겠는가?”라는 걱정의 소리였는데 마지막 원고 정리를 해 보니 총 19명의 원고가 모아졌다.

지난 4월, 아버지의 구순을 기념하기 위해 나는 형제들에게 가족문집을 제안했다. 코로나19로 지난 2년간은 명절과 기념일조차 가족모임을 하기가 어려웠다.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이 시기에 ‘어떻게 아버지의 구순을 의미 있게 기념할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념한다는 것은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한다’는 것이니 각자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글을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제들에게 의견을 묻고 “모두 찬성하면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아버지의 손주들과 손주사위들까지 해서 3세대의 글을 모아 보자”고 했다. 아버지의 구순에 모여 축하메시지를 드릴 가족들에게 ‘글로 축하메시지를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형제들의 동의를 얻고 원고 마감일을 정했지만, 원고 마감일이 다가와도 원고 대화창은 잠잠했다.

“막상 글을 쓰려니 어렵다”, “외국에 오래 살다 보니 한국어로 글 쓰는 것을 잊었다”는 언니와 동생들에게 나는 ‘아버지와 어떤 추억이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 추억이 지금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것을 써 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첫 글이 올라왔고 형제들은 서로의 글을 보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불러왔다. 기억의 빗장이 풀리자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아버지와의 지난 시간들이 현재의 시간으로 옮겨왔고 서로에게 글쓰기의 마중물이 되어 주었다. 이어 글을 부탁한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조카들과 조카사위의 글들도 하나둘 도착했다.

엄마와 인터뷰하면서 들은 아버지와의 결혼 이야기는 ‘아버지가 구순까지 건강하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엄마의 마음을 담은 글로 정리해 올렸다. 이렇게 해서 모인 18명의 글, 28꼭지의 글을 정리하고 편집하고 있을 때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원고도 도착했다. ‘나의 지난 세월’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부끄럽지만 보람차다’고 표현한 아버지의 90년 시간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열심히 살아낸 90년 세월은 자연스럽게 이 책의 에필로그가 되었고 이렇게 19명이 함께 만든 아버지의 구순기념 가족문집 「우리의 아버지 오영선」이 만들어졌다.

우리 4남매는 결혼 후 온양에서, 군산에서, 태국에서, 영국에서, 원주에서 각자 흩어져 사는 기간이 길었다. 코로나로 가족모임이 더욱 뜸했던 이때 우리는 글을 쓰며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공유했다. 한자리에 모인 이상의 시간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아버지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우리가 아직 철들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아버지의 삶 전체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글을 통해 공동으로 표현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버지의 한결같은 신앙과 삶을 대하는 성실함이다. 우리들은 비로소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시작할 때 가졌던 우리의 걱정은 기우가 됐다. 우리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성실’이라는 재산으로 이 책을 낼 수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책에 아버지의 격려의 말씀을 담은 사인을 받는 것으로 출판기념회를 했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끼리 나눈 소박한 가족문집이지만 우리에게는 아버지를 늘 기억할 수 있는 각자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오안라 안나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