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성모님의 손 /한경옥

한경옥 마르가리타 시인
입력일 2022-08-24 수정일 2022-08-24 발행일 2022-08-28 제 3308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30여 년 전 어느 날 낯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대전에 사는 언니에게서 동생인 나를 하느님 품으로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니 한번 만나자는 대방동본당의 수녀님 전화였다.

부모님께서 마흔이 넘어 낳으신 내가 결혼이 늦어지니 온 집안의 걱정거리였다. 어머니는 초하루나 보름이면 장독대에 떡시루를 올려놓고 천지신명님께 비시고 불자인 큰 언니는 절에 연등을 달고 천주교 신자인 셋째 언니는 묵주기도를, 기독교 신자인 넷째 언니는 특별 헌금을 한단다. 종교가 없는 둘째 언니와 내가 ‘그렇게 여러 신에게 빌고 있으니 신들이 서로 미뤄서 시집을 못가는 거다. 그러니 종교통합부터 먼저 하라’면서 그 중에 묵주기도가 제일 마음에 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났지만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셋째 언니에게 천주교로의 입교를 권유 받은 적이 없어 전화를 주신 수녀님께 관심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수녀님이 ‘언니가 만난 적도 없는 내게 이런 부탁을 한 것에는 분명 주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 달랑 전화 한 통 해보고 싫다더라고 언니에게 전할 수는 없지 않냐. 신자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을 테니 그냥 만나서 차나 한 잔 하자’고 하셔서 하는 수 없이 그날 수녀님을 만났다.

나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수녀님의 인자함에 감화를 받아 천주교 신자가 되는 방법을 여쭤보았다. 과정을 설명해 주시면서 현재 예비자 교리가 진행 중인데 지금부터 열심히 해서 영세를 받으라고 권하시는 수녀님께 나는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도 수녀님은 꼭 영세를 받지 않더라도 언니의 마음을 생각해서 참여해보라고 재차 권하셨다. 마지못해 교리반에 들어간 나는 열심히 하기는커녕 뒷자리에서 졸기 일쑤고 두어 번 결석까지 했다.

몇 주가 지나고 세례식 전 면담시간이 되었다. 수녀님이 ‘자매님은 교리공부를 중간에 시작한데다 출석마저 불성실했다. 그러니 다음에 제대로 공부하고 영세를 받는 게 좋겠다’고 하시는 거다. 영세를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던 나는 흔쾌히 “네” 하고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놀라 바라보시는 수녀님께 “저도 모르겠어요. 왜 눈물이 나오는지…. 아마도 이번에 영세를 받지 못하면 저는 영영 못 받을 것 같아요” 하는데 진짜로 서러워져서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다. 가만히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려 주신 수녀님이 웃는 얼굴로 손수건을 건네주셨다. 그리고는 ‘주님께서 우리 자매님을 특별히 사랑하시나 보다. 이번에 영세를 받고 대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라’면서 등을 토닥여주셨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수녀님께 전화를 드려 부탁을 해준 언니와 따뜻하게 이끌어주신 수녀님 덕분에 천주교 신자가 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는지, 진짜로 영세를 받지 못할까봐 두려워서 그토록 서럽게 어깨를 들썩이면서까지 흐느껴 울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성모님께서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아주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경옥 마르가리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