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공동의 집 돌보기-생태적 회개의 여정] (1) 누이요 어머니인 대지

박영호·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08-23 수정일 2023-01-18 발행일 2022-08-28 제 3308호 1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기후재앙에 휩쓸린 지구… 결국 모든 생명이 죽어간다
폭염·태풍 등 전 세계서 이상기후 빈발
환경 위기는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새로운 연대·방법으로 해결책 찾아야

2015년 195개국 ‘파리기후협약’ 체결
기온 상승 막으려 협력 다짐했지만
각국 경제적 욕심 챙기다 성과는 없어

오늘날 전 세계는 폭염과 태풍, 홍수, 대형 산불 등 빈발하는 기후재난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과학적 연구들은 이러한 기후위기의 현상들이 인간의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류는 지구와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 찬 울부짖음을 외면하고 오직 경제적 이익과 성장에 집착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생태적 위기에 빠진 ‘공동의 집’을 돌보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을 촉구한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교회가 회칙의 정신을 어떻게 수용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2021년 12월 20일 슈퍼태풍 라이가 강타한 필리핀 수리가오시(市)의 모습. CNS 자료사진

“환경 위기에 대한 구체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많은 노력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힘 있는 자들의 반대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사람들의 관심 부족 때문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보편적 연대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인간이 저지른 피해를 복구하려면 모든 이의 재능과 참여가 필요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14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에서 “우리는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며 ‘피조물의 비통한 호소’에 개인과 공동체의 생태적 회개를 통해 ‘행동으로 응답하자’고 촉구했다. ‘피조물의 목소리’는 창조주를 찬미하는 감미로운 노래지만, ‘인간이 가하는 학대를 한탄하며 애원하는 고통의 부르짖음’이다. 누이요 어머니인 지구는 ‘우리의 학대와 파멸행위를 끝내라고 울며 애원한다.’

극심해지는 기후재난

필리핀 중부, 비사얀 제도의 남부에 위치한 보홀섬의 투비곤(tubigon) 지역에서 70년 넘게 살고 있는 아르투로(Arturo Aplacedor, 74)씨는 지난해 12월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라이’로 집을 잃었다. 장애를 가진 30대 딸과 부인, 세 가족이 이곳에 오랫동안 살았지만 집이 무너진 것은 3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아르투로씨는 “이전에도 태풍이 자주 불어 왔지만 라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거대한 괴물 같았다”고 말했다. 코코넛 나무로 지은 집은 미친 듯 불어대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세 가족의 유일한 보금자리가 삽시간에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투비곤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지만 아르투로씨는 자신의 땅이 없었다.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형편에 태풍에서 안전한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타클로반교구 산하 단체인 소셜 액션 센터(Social Action Center)에서 자재를 지원해준 덕분에 새로 집을 지었지만 또 다시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면 더는 감당할 수가 없다.

보홀섬 주민 대부분은 코코넛 나무로 집을 짓고 산다. 보홀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이기도 하지만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주민들은 시멘트나 벽돌로 집을 짓는다. 튼튼하게 지어진 집은 매년 보홀섬을 강타하는 크고 작은 태풍을 견딜 수 있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그저 남의 일이다. 태풍 피해는 돈이 없어 튼튼한 자재로 집을 지을 수 없는 가난한 이들 몫이다.

필리핀 보홀섬의 투비곤(tubigon) 지역에 70년 넘게 살고 있는 아르투로(74)씨 가족. 지난해 12월 태풍 라이로 인해 집이 송두리째 파괴됐다. 사진 민경화 기자

가난한 이들에게 집중되는 재난

필리핀은 기후재난에 워낙 취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 파괴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무차별한 산림 벌목으로 지난 세기 동안 숲이 전체 땅의 70%에서 20%로 줄었고, 전체 열대우림은 3.2%만 남았다. 나무가 사라지니 홍수 피해가 더 극심해졌다.

대기와 수질 오염도 심화됐지만 가장 심각한 건 기후변화다. 필리핀에는 매년 20여 차례 태풍이 찾아온다. 지구 온난화로 태풍이 더 강력해졌다. 2013년 슈퍼 태풍 하이옌은 11월 5000여 명의 사망자를 내고 200만 채 이상의 집을 무너뜨렸다. 지난해 12월 태풍 라이는 400명이 넘는 희생자와 3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넉 달 뒤인 지난 4월에는 태풍 ‘메기’로 200여 명이 사망했다.

기후재난은 전 세계적이다. 유엔재난위험경감사무소(UNDRR)의 지난 4월 전 세계 재난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01~2020년 연간 평균 350~500건의 대규모 재난이 발생했다. 이전 30년 동안의 연평균 수치보다 5배 증가한 수준인데, 2030년에는 매년 560건, 하루 평균 1.5건이 발생할 것이라 예상했다.

재난의 사회적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영국 자선단체인 크리스천 에이드(Christian Aid)의 기후재난 피해 현황 보고서를 보면, 2021년 한 해 동안 발생한 대형 재난 피해액이 202조 원이 넘는다.

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재난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됐고, 빈곤층 비율이 높은 필리핀, 방글라데시, 미얀마, 인도 등의 피해가 컸다. 잦은 재난은 빈곤을 가속화한다. UNDRR은 2030년까지 기후변화와 재난의 영향으로 1억 명 이상이 추가로 빈곤 상태에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대응 실패

2015년, ‘공동의 집’을 돌보는 일과 관련해 두 가지 큰 성과가 있었다. 하나는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의 ‘파리기후변화협약(이하 파리협약)’ 채택, 다른 하나는 6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다.

기후위기는 어느 한 나라의 대응으로 해결될 수 없다. 국제사회는 새로운 기후대응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데 공감했고, 그 논의의 결과로 파리협약을 채택했다. 파리협약의 최우선 목표는 “산업화 전 수준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섭씨 2℃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 및 산업화 전 수준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섭씨 1.5℃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의 추구”다.

2020년 만료된 교토의정서를 대신하는 파리협약은 2016년 11월 발효됐다. 교토의정서와 달리 195개 당사국 모두에게 구속력을 갖는 보편적 첫 기후 합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후 국제사회는 이를 토대로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한 연대와 협력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애당초 파리협약에는 각국 탄소 감축 목표에 부여하려던 국제법상의 구속력이 제외됐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화석연료의 단계적 감축은 각국의 경제적 이해득실에 휘둘리며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영국 글래스고에서 10월 31일부터 11월 13일까지 열렸지만, 성과는 실망스러웠다. 기후재난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감축해 지구 온도를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 상승 이내로 제한하는 실질적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지만 참가국들이 자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성과를 내지 못했다.

각국 정부의 미온적 태도는 종교와 시민사회단체의 분노로 이어졌다. 총회 기간 중인 11월 5~6일 글래스고에서는 그레타 툰베리가 이끄는 청년 기후활동가들을 포함해 전 세계 종교와 기후환경 단체 10만여 명이 COP26의 실패를 선언했다.

2021년 11월 12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 회의 장면. 기후대응을 위한 탄소 배출 절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이 회의는 각국의 경제적 이해 관계에 휘둘려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CNS 자료사진

찬미받으소서, 가톨릭교회의 노력

파리협약 채택을 반년 앞둔 시점에서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반포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태위기의 근본 원인이 피조물과 인간, 하느님이 이루는 공동체성의 파괴라고 진단했다. 깨어진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통합적 생태론’을 바탕으로 인류가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전환하는 ‘생태적 회개’가 요구된다고 선언했다.

국제사회의 노력이 실패를 거듭하는 동안, ‘공동의 집’ 지구의 파멸을 향한 시계는 점점 더 긴박해지고 있다. 반면 종교와 시민사회의 생태위기에 대한 인식은 높아지고 연대는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특히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정신을 신앙의 영역으로 수용하려는 교회의 노력은 눈에 띄게 확산되고 있다.

교황청은 회칙 반포 5주년을 맞아 2020년 5월 24일부터 2021년 5월 24일까지 ‘찬미받으소서 특별 기념의 해’를 지내고, 이후 지속 가능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7년 여정에 동참해 줄 것을 전 세계교회에 요청했다.

이에 따라 한국 주교단은 2021년 5월 성명서 ‘기후 위기, 지금 당장 나서야 합니다’를 발표하고 5월 24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개막 미사를 거행했다. 이어 10월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 후 특별 사목교서 ‘울부짖는 우리 어머니 지구 앞에서’를 발표해 한국교회가 보편교회와 함께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에 동참하도록 촉구했다. 각 교구는 일제히 7년 여정의 청사진을 마련하고 향후 7년 동안 이어갈 ‘공동의 집’ 돌보기에 나섰다. 수원교구와 춘천교구는 204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2022년, 7년 여정의 첫해를 지내고 있다. 프랑스교회는 지난 4월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통합적 생태론의 실현을 다짐했고, 페루와 브라질 주교단은 정부를 향해 생태적 문제에 대한 통합적 접근을 촉구하고 나섰다. 동아프리카 주교회의는 7월 총회에서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가르침에 따라 생태환경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다짐했다. 빈번한 기후재난 피해지역인 필리핀에서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7년 여정을 추진하고 모든 사목 활동과 정책에 회칙의 가르침을 통합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에서 11월 이집트에서 열리는 제2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와 12월 캐나다에서 열리는 제15차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서 “부유한 국가들이 ‘더 야심찬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특별히 “선진국들의 ‘생태적 부채’를 지적하지만 가난한 나라들 역시 ‘차등적 책임’이 있다”며, “다른 사람들이 느리다고 해서 우리가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명분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당부했다. 우리는 분명히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에, 교황은 “우리 모두가 결단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박영호·민경화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