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코코넛 나무 집과 반지하 집 / 민경화 기자

민경화 루치아 기자
입력일 2022-08-16 수정일 2022-08-16 발행일 2022-08-21 제 330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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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모두에게 똑같이 찾아온 자연 재해였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경제적인 조건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고층 아파트에 배수시설이 잘 갖춰진 주차장이 있는 집에 사는 사람들은 이날의 폭우가 때때로 내리는 비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반지하에 작은 창문 하나로 바깥과 연결된 집에 사는 사람들은 들이닥치는 비를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어야 했다. 한 층 더 높은 집에 살기에는 “여유가 없다”는 사람들에게 이날 내린 비는 혹독한 현실의 무게였다.

환경의 훼손이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찬미받으소서」의 메시지는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필리핀 보홀섬은 기후위기로 인해 날씨가 눈에 띄게 변화됐다. 우기가 아닌 시기에 비가 내리는 일이 많아졌고, 태풍이 부는 횟수도 늘었다.

대부분 코코넛 나무로 집을 짓는 보홀섬 주민들은 태풍이 불면 집이 무너지는 피해를 입는다. 차를 타고 보홀섬 민가를 지나면 태풍으로 무너져 내린 집의 잔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온전히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집들은 대부분 벽돌이나 시멘트로 지어진 것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벽돌로 지을 수 없으니 태풍이 올 때마다 집을 잃어야 했다. 가난하기 때문에 튼튼한 집을 갖지 못한 이들은 평생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기후변화의 피해가 취약계층에 쏠리는 이러한 현상이 평등하다고 볼 수 있을까?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외면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민경화 루치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