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 박천조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2-07-26 수정일 2022-07-26 발행일 2022-07-31 제 330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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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서구 문명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융합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헬레니즘은 그리스적인 사고방식과 생각, 문화 등을 의미합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의 숙적이었던 페르시아 원정을 통해 동양의 인도까지 진출합니다. 그 결과 마케도니아 왕국이 페르시아만부터 지중해 연안까지 연결되는 대제국을 이루게 됩니다. 이때 오리엔트와 그리스의 두 세계가 하나로 융합됐던 문화를 헬레니즘이라고 부릅니다. 헬레니즘은 그리스 문화를 수용한 로마제국의 전 영토로 확산되는 과정을 거쳐 서구 문화의 한축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반면 헤브라이즘은 유다인적인 사고방식과 생각, 문화 등을 의미합니다. 헤브라이즘은 유다교에서 시작됐지만 이후 그리스도교에서 꽃을 피우게 됩니다. 그리스도교는 바오로 사도를 통해 로마제국에 퍼져 313년 공인과 392년 국교화 과정을 거쳐 이후 서구 문화의 또 다른 중심축을 이루게 됩니다.

헬레니즘의 특징이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고 현세지향적, 다신교 중심, 객관적, 논리적이라면 헤브라이즘은 신의 영역을 강조하고 내세지향적, 유일신 중심, 직관적, 감성적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이성을 바탕으로 한 헬레니즘이 유럽의 과학문명과 인본주의를 발달시켰고 유럽을 대외적으로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헤브라이즘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를 종교적, 도덕적으로 승화시켰다고 합니다. 이렇게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이라는 공간에서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서로 융합해 꽃을 피우게 됩니다.

어찌 보면 상극 같던 두 흐름이 르네상스 시기에 융합됨으로써 서구 문명을 진일보시켰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극단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보기에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배척하기보다는 융합하는 것이 더 클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되는 지점입니다.

눈을 돌려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를 살펴보았습니다. 한반도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교차점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극단처럼 보이는 두 흐름을 융합하는 역할을 할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다시는 너의 땅 안에서 폭력이라는 말이, 너의 영토 안에서 파멸과 파괴라는 말이 들리지 않으리라. 너는 너의 성벽을 ‘구원’이라, 너의 성문을 ‘찬미’라 부르리라”(이사 60,18)고 하셨던 말씀처럼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