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이제는 무섭지 않아 / 정연진 베드로 신부

정연진 베드로 신부,홍보국 부국장
입력일 2022-07-13 수정일 2022-07-13 발행일 2022-07-17 제 330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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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이 무섭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의 발랄함이 자꾸만 나를 불안하게 한다. 이 상황을 비유하자면 나는 눈사람이고 그 눈사람을 냅다 발로 차버리고는 만족스럽게 “하하하!” 웃는 그런 짓궂은 장난꾸러기가 바로 아이들인 것 같다.

아이들을 무서워하는 그 공포증이 얼마나 심한가 하면, 신학생 시절에는 주일미사 3일 전부터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시작하고 당일 아침에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식욕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어린이 미사와 학생 미사가 끝나면 그 뒤에 몇 대의 미사가 남아있더라도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신학생 시절, 그러니까 나의 출신 본당의 성당은 언덕 높은 곳에 있었는데, 걸어가면 겨울에도 땀이 날 정도였다. 어린이 미사와 중고등부 미사에 참례하러 이 높은 언덕을 올라가며 골고타 언덕을 오르는 예수님 마음을 묵상했다. “주님 저에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세요.” 콩닥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교리와 미사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가 사제 직분을 수행하면서 감당해야 하는 십자가가 무엇인지는 굳이 성찰해보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아이들을 이토록 무서워한다고 해서 그들을 싫어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무서움을 조금만 견디고 버티다 보면 아이들의 순수함에 완전히 무장 해제되고 만다. 그토록 무서워하던 아이들이지만, 막상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며 준비한 것들을 쏟아내다 보면 어느새 그들과 친구처럼 웃고 떠들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항상 깨달았다. 나는 아이들을 무서워하지만 그만큼 아이들을 참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말이다. 주일학교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그건 사랑이다.

한 선배 신부님께서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곤 하셨다. 사제 인사이동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인사이동 명령지를 잘 살펴보면, 서품 동기들의 부임지가 놀랍게도 그 사람이 극복해야 하는 문제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곳으로 발령이 난다고 했다. 사람을 좋아해서 홀로 있기를 어려워하는 동기는 한적한 마을의 본당으로, 혼자 있기를 좋아해서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는 동기는 그 어느 곳보다 활발한 본당으로 보내지는 걸 보면 확신하게 된다고 했다. 선배 말이 사실이라면 ‘그럼 나는 아이들이 많은 곳으로 가게 된다는 것일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그랬다. 심지어 가는 곳마다 지구 청소년 지도 신부만 담당했다. 통상적으로 보좌신부들 몫이었던 것이, 주임 신부가 되어서도 내 몫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정말 신앙의 신비다.

어느새 사제 생활도 9년 차에 접어들다 보니, 이제는 아이들을 보면 겁보다는 반가움이 앞선다. 물론 내가 본당 신부가 아니어서 부담감이 없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아이들을 대할 때 여유가 많이 생겼다. 코로나19로 인해 청소년들이 본당에서 많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안타깝기만 하다.

나는 이제 너희들이 무섭지 않으니 어서 돌아와 줘. 예수님과 안전하게 같이 놀자.

정연진 베드로 신부,홍보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