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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우리 시대의 수행자요 예언자인 농민 / 이미영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07-12 수정일 2022-07-12 발행일 2022-07-17 제 3303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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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지으시는 외삼촌과 이모들 덕분에, 저는 쌀이나 잡곡, 마늘, 고춧가루와 같은 주요 농산물을 시골 외가에서 직거래로 사서 먹습니다. 팔순 전후의 어르신들이 이 뙤약볕에 논밭을 일구며 농사를 지으시는 것도 고개가 절로 숙어지는데, 특히 가톨릭신자인 이모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농약이나 화학비료도 거의 쓰지 않고 친환경 농사를 지으려고 애쓰십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도 농약을 치지 않은 이모의 밭엔 잡초와 벌레가 기승을 부리니, 상품으로 내다 팔 수 있는 소출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난해도 욕심내지 않고, 힘들어도 생명을 살리는 신앙의 가치를 선택한 이모의 손은 평생 호미질로 잔뜩 휘어지고 뭉툭하게 닳았습니다. 그 손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수도자의 고행만큼이나 거룩함과 숭고함이 느껴집니다.

사촌들은 대부분 저처럼 도시에 살거나 농촌에 살아도 다른 일을 하며 가끔 부모의 일손을 거들뿐 농사를 업으로 하지 않으니, 앞으로 몇 해나 더 이렇게 시골을 오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됩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농가 수는 103.1만 가구이고, 농가 인구는 221.5만 명으로 총인구 중 4.3%를 차지하는데, 매년 그 비율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농촌의 고령화도 심해져서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17.1%인데 비해 농가의 고령 인구는 46.8%나 됩니다. 농사를 짓는 경영주의 평균 연령은 2021년 기준 67.2세로, 60세 이상 경영주 비율이 77.3%나 됩니다. 한국 사회에서 농민은 점점 줄어들고 고령화되면서, 농촌 지방 소멸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면서, 우리나라의 식량 사정도 계속 악화하고 있습니다. 1970~1980년대 평균 73.3%에 이르던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020년 기준 45.8%로 낮아졌고,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0%로 OECD 38개국 중 최하위입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밀의 자급률은 0.8%에 불과합니다. 식량의 수입의존도가 높으면 국제 식량 공급망에 문제가 생길 때 우리도 곧바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전 세계에서 전쟁과 가뭄, 폭염 등 기후위기로 대규모 식량 위기에 대한 경고음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올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세계 1위의 밀 수출국인데 식량을 무기화하며 주요 곡물의 수출을 금지했고, 세계적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의 항구도 봉쇄하여 곡물 수출을 가로막고 전쟁으로 농지도 파괴하고 있습니다. 세계 2위의 밀 생산국인 인도는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으로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밀수출을 제한했습니다. 이밖에도 많은 나라가 이상기후로 인한 곡물 수확량 감소, 전쟁에 따른 곡물 공급망 불안 등의 이유로 ‘식량안보’를 내세우며 자국 내 공급을 위해 곡물 수출을 제한하고 있어 식량난은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한국의 농민들은 농사일도 힘들고 가뭄과 폭염 등 기후위기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도 크지만, 정부가 자유무역협정을 맺을 때마다 농업 분야를 우선 희생시키면서 어려움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정부가 농수축산물 관세를 96.1% 이상 개방해야 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추진하고 있어, 수입 농수산물은 더 늘어나고 그만큼 우리의 농어업은 황폐해질 것으로 우려됩니다.

식량이 무기가 된 시대에 4.3%의 소수자가 된 농민들이 수행자요 예언자처럼 땅을 일구고 곡식을 키우는 땀과 노고 덕분에 그리고 수출산업 우선의 정부 정책에 희생되는 농업을 지키고자 힘겹게 싸우는 투쟁 덕분에 그나마도 우리의 식량을 지키고 있음을 제27회 농민주일을 맞아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해 봅니다. 농민들의 고군분투가 그들만의 싸움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관심과 연대가 절실합니다.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